Part10 - 대홍수

대홍수와 지역 신화

{수잔 와이즈 바우어, 세상의 모든 역사: 고대편 1, 이론과 실천, 2007, 35p}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수메르의 왕조를 알 수 있는 이유는 기원전 2150~2000년(우르 3왕조에 해당) 점토판에 수메르 설형 문자로 기록된 '수메르 왕명표' 덕분이다. 수메르 왕명표는 조선왕조실록처럼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룬 것은 아니며, 이름과 재위 기간 그리고 일종의 칭호 같은 것이 적혀있었다. 특이한 점은 대홍수라는 사건을(기원전 2900년으로 추정) 전후로 전설적인 왕조와 실질적인 왕조(키쉬 제1왕조)가 나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대홍수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을까?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며 이에 대한 반박 증거도 넘쳐난다. 대홍수에 대해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의 의견은 "인류가 완전히 파멸했다거나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삼각주 거주민 전체가 멸망할 정도의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역사의 이정표 혹은 하나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타격은 있었다고 본다"라고 말하였고 그는 실제로 메소포타미아 취락에서 3미터 두께의 홍수로 인한 지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지층은 메소포타미아 남부를 종식시켰다고 보기에는 국지적이었고 그 시기도 기원전 2800년이라 맞지 않다.

지질학자인 윌리엄 라이언과 월터 피트먼은 대홍수까지는 아니고 지속적인 범람이라고 주장한다. 범람한 물이 제대로 배수가 되면 괜찮았겠지만 도시 인근의 농경지는 관개기술 때문에 지하수의 수위가 높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람은 범람일 뿐 지표면의 형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정도의 단일 사건은 아니며, 페르시아 만의 상승도 10년에 30cm 정도여서 속도가 상당히 느렸다.

또 다른 의견은 기원전 7000년 지구가 따뜻해지고 빙하가 녹아 지중해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흑해와 지중해 사이를 막고 있던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흑해 인근 마을에 살던 코카서스족을 포함한 여러 민족이 겪은 수몰 이벤트가 후손에게 전해져 메소포타미아에 살던 수메르인에게까지 전승된 것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다. 이 부분도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5000천 년 동안이나 구비전승으로(문자가 없었으니) 대홍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기가 쉽지 않기에 신빙성이 없다.

하지만, 대홍수 사건은 분명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물론, 어느 한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다. 추측되는 시점도 각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제외하고도 대홍수 신화는 발견되지 않는 대륙이 없을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고대 신화에서 대홍수 이야기는 매우 흔한 주제이며 이는 신석기인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는 트라우마 때문일 것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지난 1만 년간 해수면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였고 기원전 4000년은 되어야 해수면 상승이 멈춘다. 그래서 오늘날 신석기인들의 해안가 주변 유적지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지난 6000년간 해수면이 120M 상승하였으니 물에 대한 공포감은 단골 주제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홍수라는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신석기인들은 이야기로써 그 현상을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이 최선이었고, 뇌리에 박힐만한 이벤트가 흔하지 않던 환경 때문에 대홍수는 수백 수천 년 동안 기억되어 사실이 전설이 되고 전설이 신화가 되었다. 대홍수 이야기의 플롯은 대부분 (1) 원인을 제공한 인간 (2) 그것에 분노하는 절대자 (3) 분노의 표출물로써 대홍수 (4) 새로운 세상의 시작으로 구성되며 각 지역적 특색에 맞게 각색되어 있다. 그리고 각 지역별 신화는 아래와 같다.

<수메르 신화>- 바람의 신이자 신들의 우두머리인 엔릴이 노동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가진 인간들을 모두 없애 버리자고 주장하지만, 물의 신이자 자비로운 신인 엔키는 이러한 계획을 지상의 왕이자 제사장인 지우수드라의 꿈에 나타나 엔릴의 대홍수 계획에 대해 알려준다. 우바르투투의 아들인 지우수드라는 미리 큰 배를 준비하고 온갖 동식물 종자를 실음 그 뒤에 대홍수가 난다. 이후 대홍수가 7일 밤낮으로 계속되었으나, 방주를 만들어 피신한 지우수드라는 살아남는다. 홍수가 멈추고 태양이 나타나자 지우수드라는 문을 열고 나와서 태양신 우투(Utu)에게 소와 양을 바치며 제사를 지낸다. 하늘의 신 안(An)과 신들의 왕 엔릴이 지우수드라에게 신처럼 살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을 주고, 지우수드라는 딜문(Dilmun)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지우수드라는 수메르어로 ‘목숨이 오래 있다’는 뜻이다.

지우수드라는 아카드어로 기록된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트라하시스(Atrahasis)와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과 동일 인물이다. 모두 대홍수에서 신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유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빌론 신화> - 가장 오래된 홍수 이야기 중 하나인 길가메시 서사시이고 12개의 돌판에 기록됨. 수메르의 왕인 길가메시는 불멸을 원했고 불멸의 남자인 우트나피쉬팀이라는 남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노아의 이야기와 흡사) '에아'라는 신이 나타나 대홍수가 날 것이란 걸 우트나피쉬팀에게 알렸고 그는 방주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한다. 방주에는 모든 종의 생물을 데려오고 그는 불멸을 얻었다는 이야기.

<유대교 & 기독교> - 익히 알고 있는 구약성경 창세기의 이야기로써, 인간에 대한 신의 분노 그리고 선택받은 자(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만든 방주가 최소한의 생명을 보존했고 그 후손들이 새롭게 세상을 다시 시작하는 내용임. 이슬람의 코란에도 같은 이야기가 반영되었다.

<그리스> - 인간의 사악함에 분노한 제우스가 홍수로 인간을 멸하려 했으나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인 데우칼리온이 방주를 만들었고 9일간의 대홍수가 있은 후 방주는 파르나소스 산에 위치한다.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그의 아내인 피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된다.

<힌두> - 최초의 인간 마누는 물고기(물고기의 형상을 한 신)를 발견하고 보호해 준다. 물고기는 마누에게 배를 만들라고 경고했고 배는 물고기의 뿔에 묶은 뒤 물고기가 배를 산꼭대기까지 인도한다. 대홍수 이후 물이 빠지자 마누는 제사를 지내고 바다에 버터와 신 우유를 붓자 1년 후에 여자가 나오는데 그녀는 마누의 딸이다.

<불교> - 한 능력 좋은 목수 집단이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배를 만들어 항해하고 아름다운 섬을 발견한다. 거기에 살던 영혼과 잘 지내려면 배변과 소변을 본 뒤 구멍을 잘 덮어야 하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목수가 많았다. 분노한 영혼은 홍수를 내리려고 했고 목수 중 현명한 사람들은 영혼의 경고를 듣고 배를 만들었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배를 만들지 않고 술 마시고 놀았다. 결국 대홍수가 일어나 섬 전체를 덮쳤고 현명한 사람들은 배를 탄 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국> - 어느 날 한 농부가 붙잡은 천둥의 신을 농부의 자녀들이 구해준다. 천둥의 신은 대홍수를 경고했고 두 남매에게 호리박에 숨으라고 조언한다. 그들은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 되고 새로운 땅에 식물을 심고 사람과 동물을 키운다.

<인디언> - 위대한 영혼이 인간에게 불만을 품고 대홍수를 만든다. 유일한 생존자인 Waynaboozhoo는 살아있는 동물들을 싣기 위해 뗏목을 만든다.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진흙이 필요했는데 작은 오리가 본인을 희생해 흙을 가져온다. 거대한 거북이가 본인의 등딱지를 제공해 땅이 되어주고 오리가 가져온 흙으로 세상을 빗는다.

<잉카> - 창조신이 처음에 거인족을 만들지만, 그들에게 화가 나서 돌로 만들어버리고 나머지는 대홍수로 없애버림.

<칠레> - 거대한 두 마리의 뱀이 경쟁하여 홍수가 났는데, 한 뱀은 물의 수위를 올렸고 다른 한 뱀은 산의 높이를 올렸다. 산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살아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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