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0 - 권력과 도시 국가의 탄생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권력이라는 단어는 책이나 미디어에서 볼법한 단어이다. 물론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친숙하지가 않다. 예를 들어서 '너는 참 권력이 세구나', '나는 권력이 약해'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는 곳에 넣고 억지로 만들어낸 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권력 생성의 근본 원리 중에는 타자와 맺은 관계의 수 즉,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많아질수록 더 강화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집단의 크기가 큰 단어에 권력이라는 낱말을 붙일수록 그 어색함은 덜해진다. 국가, 종교, 언론, 대통령, 당 대표 등) 그래서 고작해야 너와 나 사이의 독립적 관계에서는 그러한 힘이 생성되기 힘들고, 때문에 그러한 힘을 느껴보질 못했으니 말하는 것조차 어색한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너와 내가 독립적이지 않고, 어느 한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면 둘 사이는 권력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높을 것이다. --> 집단 내의 지위 차이로 인해)

권력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어떠한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한병철의 '권력이란 무엇인가' 서문에서 그는 한국인에게 있어 권력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그 뒤를 이어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독재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흔적을 남겼다. 그래서 권력은 억압이자 부자유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져지고 있다'

한병철 '권력이란 무엇인가' 서문

 

나의 세대에서는 그러한 역사를 책으로만 봐왔지만,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살았던 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한 공감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권력이란 강제력과 독재, 폭력이라는 의미와 동치 되어서는 안되는 개념이라 갈파한다. 역사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에 의한 희생보다 권력의 부재로 인한 희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리고 슬프게도 권력의 부재 속에서 희생되는 것은 늘 약자였다) 자연은 예부터 공백을 허용하지 않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무엇인가 새로이 생겨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 권력 또한 마찬가지다. 권력이 부재하는 공간에는 새로이 무엇인가 부딪혀 새로운 질서 즉, 새로운 권력이 만들어져왔다. (바보같은 권력자 옆에는 항상 그를 조종하려는 세력이 있었다.) 무엇인가 부딪히는 과정은 보통 인간 본성의 깊은 내면이 발현되어 생존투쟁의 형태로 나타나곤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 관점에서 보면 권력은 폭력과 반대로 생산적이고, 혼란이 생겨나는 것을 막았다.

[토막 상식]
무질서는 폭정보다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대량 학살은 권력을 휘두른 결과가 아니라 권력이 붕괴한 결과로 발생한다. 나는 이디 아민과 사담 후세인처럼 절대 권력을 행사해 수십만 명을 살해한 몇몇 독재자보다, 오히려 러시아 동란 시대(17세기), 중국의 국공 내전(1926~1937년, 1945~1949년), 멕시코 혁명(1910~1920년)처럼 충분한 통제력으로 수백만의 죽음을 막을 권력자가 없어서 발생한 격변이 더 빈번하고 더 치명적이었다는 결과를 얻었다.
출처: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사이언스 북스, 2021, 309p

그렇다면 권력은 절대적으로 인간의 창조물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20세기 중반 들어 동물행동학이 발전하면서 제인 구달을 필두로 권력의 행태는 영장류 사회 내에서도 존재함이 밝혀졌다. 이번 part에서는 계통 분류상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 사회 내의 권력 생성 과정을 통해 인간의 원시적 권력을 추론해보면서, 현인류의 입장에서 본 권력을 정의해 보고, 더 나아가 인류가 고대 문명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시점의 초기적 권력이 어떻게 하여 무리 -> 부족 -> 추장 -> 국가를 거치면서 변화해 갔는지 개괄해 보려 한다. 다행히도 초기적 권력이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는 타임머신을 타고 가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는 여전히 무리, 부족, 추장을 중심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가 조금씩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래에 언급하는 사회적 특징은 대부분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여 얻은 결론이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린다.

( 아카드 제국: 나람신 왕의 승리의 비석)

 

침팬지의 서열을 통해 엿본 '원시적 권력'

{출처: 박성진, 영장류의 사회적 행위를 통한 ‘권력’의 의미와 기원에 관한 연구, 영남대학교}

인간이 고등 영장류인 유인원의 행태를 분석하면서 얻어낸 큰 이점 중 하나는 타임머신 없이도 몇백만 년 전 우리의 과거를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러한 유추를 유인원으로 하는지 따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선험적으로 그들이 우리와 매우 유사함을 알고 있으며, 유전적 계통으로 봐도 유인원은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인간과 가깝다.

논문 '영장류의 사회적 행위를 통한 ‘권력’의 의미와 기원에 관한 연구'에서는 침팬지를 관찰한 사례를 통해 아래와 같이 그들의 권력형 행동을 정리한다. (침팬지가 주인공이지만 서술의 편의상 1인칭을 사용하겠음)

(1) 다양한 연합을 결성하고 동맹과 해산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합종연횡한다.

[예시]
침팬지 두 마리가 서로 때리거나 위협을 하기 시작하면 제3의 침팬지가 개입해서 한쪽 편을 들어준다. 그 결과 두 마리가 제휴해 한 마리와 싸우게 된다. 많은 경우, 싸움이 더욱 확대되고 더 큰 연합이 형성된다. 보통은 하루에 5~6회의 연합을 볼 수 있고 팀을 짜서 철저하게 관찰한 결과 1년에 총 1,000~1,500회의 동맹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것들은 ‘C가 A를 지원, A는 B와 대립’이라는 긴 목록으로 기록된다. 이 리스트를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침팬지들이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개입할 때 어느 한쪽을 선택적으로 편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de Waal 2007, 29-30).

(2) 가치판단의 기준이 자신과의 친밀도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따라서,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가 나의 행동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리고 설정된 관계는 최대한 유지하려 한다.

[예시]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침팬지로 유명한 콩고(Congo)의 경우에 친밀함과 그가 베푸는 지원의 양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있었다. 동물학자 모리스에 따르면, 콩고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네 사람 각각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겼는데, 이 우선순위는 콩고가 이들 각자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네 사람이 싸우는 시늉을 했는데 콩고는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사람 편을 들었다. 여기서 콩고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아른험 동물원의 경우도 이에 대한 자료가 충분하다. 몇 해 동안 일어난 침팬지들 사이의 충돌에서 500회에 이르는 개입 행동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특이한 현상이 발견된다. 총 23마리의 수컷 중 유독 2마리가 친밀도에 따라 충돌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었는데 이들은 최고 서열에 있는 침팬지였다. 최고 위치에 있을 때 친밀도에 따른 개입이 줄어드는 패턴은 다른 침팬지가 이 위치에 올랐을 때도 나타난다(Morris 1979, 147).

(3) 기존의 관계 속에는 기본 서열이 존재하지만 나와는 다른 관계들이 내 주변으로 들어와 내 삶에 개입하면 권력관계가 재편되는 의존 서열이 작동한다. 의존 서열은 관계 내의 서열을 바꾸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관계', 즉 '네트워크=권력망'의 변화에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시]
야생 집단의 새끼 원숭이 두 마리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어느 놈이 그것을 집는지 관찰했다. 먹을 것을 먼저 집는 원숭이가 서열이 높은 것인데 여러 차례 실험을 진행한 결과 새끼 원숭이의 서열 관계는 새끼와 어미 사이의 거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양쪽의 어미가 새끼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원숭이 A는 B 보다 서열이 높지만 어미들이 가까이 있으면 그 순위는 뒤바뀐다. 그러한 역전은 B의 어미가 A의 어미보다 서열이 높다는 사실과 관계가 있다. 서열 높은 어미를 가진 새끼는 어미가 근처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득을 얻는 것이다. 원숭이 사이에는 ‘기본 서열(basic rank)’이 있고 동시에 ‘의존 서열(dependent rank)’이 작동한다(Kawai 1965, 111-48).

(4) 예정에 없던 에너지 소비와 위험을 동반하는 본인의 희생(순찰활동)을 감행해서라도 권력관계(네트워크)의 결성과 참여에 대한 기회를 놓지 않는다.

[예시]
수컷 침팬지들은 항상 팀을 구성하여 자신들의 영역 경계선을 순찰하는데 이는 다른 무리의 침팬지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거나 침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순찰 활동은 다른 무리들을 만나 싸움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활동이며 신체적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순찰에 실패했을 경우 처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수컷 침팬지들은 주기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영역의 경계선으로 순찰을 나간다. 때로는 순찰에 나가지 않거나 순찰 활동의 빈도가 매우 낮은 수컷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러할 경우 해당 수컷은 다른 수컷과 연합을 결성하기 힘들고 높은 서열에 결코 올라갈 수 없다(Mitani 2009, 215-27).

(5) 본인이 속한 권력 네트워크의 수준이 높을수록 질 좋은 음식 섭취 가능성 증가 & 교미 횟수 증가라는 보상이 뒤따른다.

[예시]
아른험 동물원의 침팬지들을 관찰하다 보면 이들 사이에서는 서양 문명에서는 이미 잊혀진 ‘초야권(初夜權)’을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발견된다. 이에룬이 1 인자의 자리에 있을 때는 그놈 혼자서 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교미의 4분의 3 정도를 독점했다. 이에룬이 몰락한 직후 니키의 정권 하에서 교미 횟수는 니키와 동맹 관계였던 라윗이 1위였다. 권력관계에 속하지 않은 수컷 침팬지 단디의 경우 교미 횟수는 권력투쟁의 혼란기를 제외하고는 늘 하위권이었다. 수놈의 서열과 교미 빈도의 사이에는 명확한 연관성이 있다. 서열 높은 수놈의 생식능력이 반드시 더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서열이 낮은 라이벌을 암놈에게서 멀리 쫓아버리는 일에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조금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de Waal 2007, 162-63).

(6) 자신이 속한 권력 네트워크를 확장하려고 한다. 이때 네트워크 간 충돌이 일어나면 잔인한 유혈분쟁이 일어난다.

유혈분쟁에 참여하게 되면 위험(부상 및 살해)하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이 속한 권력 네트워크(권력망) 내의 본능적 욕망(지위를 획득하고 더 많은 자손을 퍼트리고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기 위한 욕망과 욕구)이 미래에 다가올 위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다.

[예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아프리카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 은고고 지역에 서식하는 침팬지들을 관찰한 결과, 이 지역의 침팬지들은 주변의 다른 무리들과 자주 충돌을 일으킨다. 이 충돌은 집단적이며 무리의 수컷들이 총동원되어 전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들이 이와 같은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신들의 영역 혹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인데 자원, 즉 나무 열매가 많아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암컷을 획득하기 위해 잔인한 유혈분쟁을 일으킨다. 실제로 이 지역의 침팬지들은 150마리의 침팬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비옥한 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데 개체 수가 가장 많은 무리가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다(Mitani & Watts 2010, R507-08).

(7) 약자를(늙은 침팬지, 암컷 & 새끼 침팬지, 어린 침팬지 등) 보호하는 보안관 행동을 통해 본인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넘보는 다른 도전자들에 대항하여 연대 협력이 이루어지고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예시]
침팬지 폴리틱스에 의하면 우두머리 수컷 이에룬에 이어서 우두머리가 된 기존의 2인자 라윗은, 우두머리가 되기 전에는 전체 행동 중 35%만 약자를 지원하는 행동에 할애했지만, 왕좌를 차지하고 나서 이 수치는 69%로 증가하고 1년 뒤에는 86%까지 올라간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모종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가진 우두머리들이 살아남았기에 이러한 행동양식은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우두머리는 짝짓기 기회가 많기에 이러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 수도 많아졌을 것이다. 보안관 행동을 빈도 높게 능숙하게 했던 지도자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했으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원만하게 물러나며 다른 침팬지들의 보호와 위로를 받는다. 침팬지 무리에서 보안관 행동을 하지 않은 우두머리들은, 본인과 연대했던 차순위 침팬지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 2018)

정리하자면, 우리가 고등 영장류에 머물던 시절 얻게 된 원시적 권력은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원시적 권력: 생물의 본능적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다른 개체와의 심리학적 관계에 의해 생성된 복잡한 네트워크(망)이다. 하나의 개체는 강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다른 개체에게 가까워질수록 혜택이 강화되니 어떤 면에서 보면 와이파이와 그 성질이 유사하다. 이 네트워크 내의 지위 변동은(가입, 탈퇴, 유지, 서열 상승/하락) 전적으로 각 개체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에 따른 가시적/심리적 보상은 생물의 본능적 욕망과 연결된다.

원시적 권력은 현존하는 인류가 보여주는 권력의 형태와 비슷한 점이 많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눈으로 본 권력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권력의 정의

{한병철, 권력이란 무엇인가, 문학과지성, 2016}

{출처: 박성진, 영장류의 사회적 행위를 통한 ‘권력’의 의미와 기원에 관한 연구}

인간 본성 중 사회를 구성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협력과 이타심이다. (자세한 내용은 Part1 인간 본성 참고, https://m.blog.naver.com/gb145/222996084860) 혹독한 자연환경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고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느낀 우리의 선조들은 사회를 구성하려는 욕구가 강했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한 집단은 생존에 유리했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때문에 집단을 이루고 사회화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며, 이러한 본성에 따라 인간은 끊임없이 집단을 형성한다.

인간의 유전정보 측면에서 보면 구석기 시대 사람과 현인류는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인간 본성의 형성 또한 구석기 시대 수렵채집에 의존해 살던 때 이후로 멈춰있다고 볼 수 있는데(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인 이유 중 하나), 이 중 집단을 만들려는 본성은 결과적으로 원시적 권력 네트워크를 발달시켰다. 발달한 권력 네트워크는 집단 내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최고 권력의 끊임없는 교체를 불러오고 집단은 그렇게 몸집을 키운다.(실패한 집단은 흡수되거나 소멸) 집단의 생성이 먼저냐 원시적 권력의 생성이 먼저냐는 논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집단의 생성이 먼저이며 권력은 어찌 보면 고등 생물의 양질의 생존을 위한 심리학적 산물일 뿐이다.

구석기 시대 인류가 현생 인류까지 살아오면서 집단의 생성은 끊기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권력관계도 집단의 수만큼 많아지고 새로운 형태의 집단이 생기면 그에 따라 새로운 권력의 형태도 생겨났다. 원시적 권력이 어떻게 진화해 갔는지 + 어떠한 권력의 형태가 생겼다가 사라졌는지 모두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권력은 집단 내 각 개체의 심리가 반응해서 만들어진 산물이기에 그 모호한 실체에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의 정의에 대해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하는 공통점만 뽑아낸다면 아래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 (현인류 관점)

권력은 '강제력, 권위, 자원'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 혹은 집단 내의 행동에 지배적 영향력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행사하면서

(강제적 혹은 자발적) 순응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권력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내가 가진 의견을 타인 혹은 집단에게 강제할 힘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가시적인 힘보다는 전자기력과 같은 필드 형태의 힘에 가깝다) 그리고 그 권력의 크기는 아래와 같이 나타낼 수 있는데 고전적 권력의 형태와 좀 더 가까운 예시라는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 (현대사회는 계몽주의를 기점으로 권력 분산이 많이 진행됐으므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

권력의 크기 = 권력 자원의 양 X 권력 자원에 대한 그 시대의 가치 X 집단의 크기 X 저항하기 어려운 심리적 강제력에 순응하는 타인의 수 X 존재감 X 메세지 전달 수단의 속도

<권력 자원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 가치>

권력을 행사하려면 통치자는 권력 자원(Power resources)를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그 능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 혹은 집단과 일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의 회장은 A 회사의 임직원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 시킬 수 있을 만한 권력을 갖고 있지만, 우연히 마주친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동네 아저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그리고 권력 차이는 집단 내 소속된 개체들의 권력 자원 차이가 발생해야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권력 자원의 대상은 어떠한 것이 될 수 있을까?

권력 자원의 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가치에 의존적이기에 일원화된 기준으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예를 들어 원시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그때 당시에 가치 있다고 여겨진 조개껍데기를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혹은 사냥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권력과 유사한 힘을 집단 내에서 발휘했을 것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초기 농경 사회에서는 물을 다룰 줄 아는 능력, 날씨 예측 능력, 주변 부족과의 충돌 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 토기를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만드는 능력, 주변 사람들을 달변으로 감화시키는 능력 등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집단 내에서 일종의 권력과 같은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이처럼 고품질의 에너지(예를 들면, 물질적=귀중품 & 물리적=완력 & 정신적=지식 & 사회적=돈 등)가 집단 내 구성원 사이에서 차이가 났다면 권력 탄생의 불씨가 지펴지는 기본 조건은 만족한 셈이다.

하지만 권력 자원의 차이가 반드시 권력의 탄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크기 & 집단 내에서 권력에 순응하는 사람의 수>

권력 자원이 많더라도 권력이 발휘될 집단의 크기가 작다면 그 영향력은 당연히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비하다. (농경 사회의 경우 집단의 크기가 작으면 두터운 혈연관계로 이루어졌을 확률이 높고, 이러한 집단은 무리 내의 의사 결정 회의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중재되기에 권력 형성이 되기 어렵거나 미약하다. 따라서 혈연관계가 희석될만한 크기의 규모가 돼야 권력이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또한 마찬가지로 한 집단 내의 의견은 모두 동일할 수 없기에 통치자와 의견을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같이 하는 사람의 수가 권력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순응하는 사람의 수가 많으려면 그 권력은 정당성을 얻어야 하고 구성원들이 집단에 대해 의존적이어야 한다. (집단에 속함으로써 얻는 혜택을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 권력의 정당성은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는데 정당성이 지속될수록 권력 내 순응하는 사람의 수가 유지되거나 증가한다.

  • 전통적 정당성(세습 & 종교): 부족 사회, 고대 국가, 봉건 사회, 절대군주제의 경우 오랜 전통과 관습을 통해 그 권력의 정당성을 얻음
  • 법적&합리적 정당성: 제정된 법률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통해 권력을 얻고 그 정당성을 인정받음
  • 카리스마적 정당성: 변혁의 시기에 영웅적 면모를 가진 인물이 그 능력에 의해 권력을 얻고 정당성을 인정받음

<권력자의 존재감>

설사 위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권력은 집단 내 각 개체의 심리가 반응해서 만들어진 산물이기에 통치자가 본인의 노력으로든 타인의 노력으로든 통치자처럼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 인간은 대개 어떤 사물 또는 사람이 실제로 누구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서는 피통치자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심리학적 장치들이 많이 나타나며 이들 사이에는 심리적 저항선이 생기게 된다.

  • 거주 공간: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 심리적 저항선을 만들며, 내/외부적으로 장식을 달리함으로써 차별점을 내세운다.
  • 모임 장소: 발언을 하는 장소는 다수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위치하게 만들어 심리적 저항선을 만든다. 예를 들어 단상을 배치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한다든지, 원형 극장의 중심에서 발언한다든지.
  • 의복과 장신구: 권력자를 상징하는 의복과 장신구를 걸쳐서 차별화하고 가상의 심리적 저항선은 신분이라는 제도로 현실화된다.
  • 의사결정: 정보를 독점하며 하향식 명령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의사 전달자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상대에 대해서 인간은 부풀려 상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심리적 저항선이 생기게 된다.

<메세지 전달 수단의 속도>

하나의 권력이 공간적으로 널리 흩어진 사람들과 소통할 때는 속도가 관건이었다. 가령, 어떤 메시지가 이틀 걸려 수신자에게 도달했다면 답신을 받는 데도 최소한 이틀이 걸렸을 것이다. 결국 메시지를 주고받기까지 나흘이 걸리는 셈이었다. 나흘 동안에는 많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답신을 받기 전에 통치권자가 또 명령을 내리면 현장의 상황에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메시지가 전달되는 속도는 하나의 권력이 통치할 수 있는 영역의 크기를 결정했다.

권력의 크기 (권력 자원의 양 X 권력 자원에 대한 그 시대의 가치 X 집단의 크기 X 저항하기 어려운 심리적 강제력에 순응하는 타인의 수 X 존재감 X 메세지 전달 수단의 속도)에 영향을 주는 인자들은 각 권력 네트워크 안에서 끝없이 부딪혔고 영원한 권력은 없었을지언정, 그 순간의 최고 권력은 언제나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신석기 시대가 도래했을 당시부터 국가가 형성되기 전까지 권력은 어떠한 형태로 인간 사회의 발전과 함께 했을까?

무리 사회 - 농경 사회의 출현 전 권력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240p}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 386p}

농경 사회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기 전인 수렵&채집 ~ 초기 농경 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식량 자원을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기원전 6000년까지는 (본격적인 농경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 동쪽 지역에서 시작되는 시기, 전 세계적인 해수면 상승이 멈추고 일정하게 유지되기 시작한 시기 -> 거주지를 더 이상 옮기지 않아도 됨) 권력 자원의 양도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기껏해야 수십 명에 불과한 무리 사회에서는 집단의 크기가 크지 않았기에 소수를 통제할 권력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약한 수준이었다. 그 사실은 이 시기의 무덤 양식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레반트 지역의 정주 수렵&채집인들 유적지 내에서는 무덤 내의 부장품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참조: Part4 - 신석기 시대 (레반트의 선토기 문화) https://blog.naver.com/gb145/223062785943) 집단 내의 위계질서는 눈에 띌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사실 무리 내에서는 영구적인 거주지 없이 주변의 자원이 떨어지면 이동하는 생활을 반복했기에 땅도 재산도 개인에게 분할되지 않았고 집단 전체가 함께 이용했다. 경제활동 또한 성별의 구분 없이 누구나 참여해야 했다. (성별에 따라 일은 다르지만)

일부는 이러한 사회를 소위 '평등주의적 사회'라 부르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공식적인 '지도자'라는 지위는 공석이어도 원시적 형태의 권력 자원의 양(인격, 힘, 지능, 전투 기술)이 많은 사람은 무리 내의 일시적 지위를 활용하여 발생하는 갈등과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침팬지나 고릴라 등 유인원이 보여주는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 형태
무리
부족
추장
국가
구성원 수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 ~ 수만 명
5만 이상
정착 유형
수렵 채집, 유목
정주:1개 촌락
혹은 유목
정주: 1개 이상의
촌락 혹은 유목
정주: 많은 촌락과
도시 연합
관계의 근거
혈연
혈연에 기초한 씨족
계층
계층
민족 및 언어의 수
1개
1개
1개
1개 이상
정책의 결정
평등주의
평등주의 또는 대인
중앙 집권적, 세습적
중앙 집권적
관료층
없음
없음
없음 or 1~2개 층
다층
권력과 정보의 독점
없거나 미약
미약함
있음
합의적 권력
있음
강압적 권력
분쟁 해결
비공식적
비공식적
중앙 집권적
법률, 심판관
정착지내의 위계
없음
없음
최고 촌락
수도
식량 생산
없음
없음 -> 있음
있음 -> 집약적
집약적
노동 분화
없음
없음
없음 -> 있음
있음
교환
호혜적
호혜적
재분배(공물)
재분배(조세)
토지 소유권
무리
씨족
추장
다양함
계층화
없음
없음
있음(혈연형)
있음(비혈연형)
노예제
없음
없음
소규모
대규모
엘리트 층의 사치품
없음
없음
있음
있음
공공 건축물
없음
없음
없음 -> 있음
있음
고유 문자
없음
없음
없음
있음

(사회 형태에 따른 특징 분류, 출처: 총균쇠 385page)

[토막 상식]
위의 표는 각 사회 형태가 생겼을 당시 초기의 특징을 적어놓은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시점에서 보면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지금도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부족 사회의 인구는 수백 명 단위가 아니라 수천 명 단위일 수 있으며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인류의 진보된 기술 혜택을 받았기에 (농업, 의학, 교육 등) 사회 형태만 국가가 아닐 뿐이지, 그들이 선택한 정치 형태에 따라 집단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오고 기원전 6000년을 기점으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관개 농법을 이용하여 초기적 농업의 단점을 극복하고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낸다. (참조: Part5 - 신석기 시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동쪽) https://blog.naver.com/gb145/223077177557) 덕분에 인구가 눈에 띄게 증가하여 수백 명 규모의 친족 집단 부족 사회를 만들게 되는데 아래 그래프를 보면 전 세계적 인구 증가는 기원전 6000년을 기점으로 가속도가 붙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잉여자원과 인구증가는 권력 네트워크의 다양화와 권력 크기의 증가를 부르는 요인이 되었다.

전세계 인구수 변화 (기원전 1만 년 부터 기원년까지 변화) 출처:&nbsp; https://ourworldindata.org/
 

부족 사회 - 혈연관계가 버틸 수 있는 최대크기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 388~392p}

인구가 증가하여 기원전 6000년경 이후에는 수백 명 규모의 부족 사회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부족 사회가 무리 사회와 다른 점은 인구 규모가 수십에서 수백으로 늘어났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공인된 친족 집단(씨족=clan)이 서로 모여서 함께 생활하였으며 토지는 특정 씨족이 소유했다. 때문에 권력 자원도 특정 씨족에게 집중되었다. 그렇지만, 부족 사회 내 권력은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었고 그러한 배경은 아래와 같다.

[토막 상식]
레반트 지역에서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수렵&채집으로 삶을 영위하는 부족 사회가 기원전 1만 년에 이미 형성됐기에, 기원전 6000년은 부족 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넓게 퍼지는 시기쯤으로 이해하면 됨

수백 명 규모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면 단점도 따라오기 마련인데, 그중 하나가 구성원 간의 갈등이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친족이나 친인척 등의 유대관계로 이루어져 처음 보더라도 결국엔 먼 친척일 수밖에 없는 부족 집단 내에서는, 발생했던 갈등들이 폭력으로까지 번지지 않았다. 더불어 각 촌락의 장들로 구성된 부족 회의 내에서는 갈등에 대한 가치 판단을 즉각적으로 내려 집단적 결정을 했고, 정보와 의사 결정도 집단 전체가 공유했기에 비교적 투명한 사회였던 것도 한몫했다. 이러한 부족 회의 내에 의장직은 따로 없었으나 대인(Big man)이라 불리는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 존재했다. 대인은 공식 직위가 아니라 순전히 본인의 자질을 통해 얻는 위상이었으며, 독자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생활환경은 겉으로 봐서는 구분이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인이라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똑같이 농사에 참여해야 했다.

잉여생산물의 분배는 개인 또는 가족 사이의 호혜적인 교환을 전제로 했다. 토기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생겼지만, 그들도 비중은 다를지언정 일은 해야 했다. 그렇게 사람들 간 일의 차이가 없으니 허드렛일을 시키기 위한 노예의 필요성도 없었다. (공공 건축의 수요도 적었음 = 노동 집약 사업)

그래서 부족 사회는 무리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한다. 잉여생산물이 있기에 집단을 수백 명 규모로 유지할 수는 있지만, 집단 내의 계층화, 직업의 전문화, 권력 자원의 비대칭 심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회 구조 모멘텀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장 사회 - 중앙집권과 불평등의 시작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 392~400p}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241~243p}

*설명에 앞서 이 글에서 언급하는 추장 사회는 Chiefdoms을 의미한다. 다양한 책에서는 이를 족장 사회, 군장 국가 등 다양한 형태로 부르고 있으나, 이번 글의 전체적인 맥락상 총균쇠에서 정의한 '추장 사회'라는 이름을 따를 예정이다.

추장 사회는 상향식의 합의적 권력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여기서 합의적 권력이란 '사람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형성된 권력으로써, 이는 개인적&가족적 자율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권력자가 자신들의 삶과 자원을 통제하도록 허락하고 반대 급부로 사회 내 문제를 조화롭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합의적 권력이 탄생한 배경은 아래와 같다.

증가한 농업 생산량을 바탕으로 생긴 잉여자원의 지속적인 축적은 권력 자원의 비대칭을 낳았고, 인구 규모는 수천 명에 달했으며, 직업적으로 전문화가 이루어져 부가가치가 더 높은 물건을 생산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진 추장 사회는 집단 내 권력을 잉태할 환경적 조건이 충분했다. 그러한 가운데, 추장 사회는 부족 사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왜냐하면 이 두 사회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사회든지, 사회는 그것을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구심력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무리나 부족 사회는 그 구심력이 혈연관계였고, 동물의 세계도 보통 혈연관계로 이어진다. 혈연관계 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중재가 가능했고, 다수가 이해하는 선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 내의 결정에 따라 문제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집단 내 조화를 도모하는 정치적 기구가 있었음)

하지만, 수천 명 규모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을 하나의 집단으로써 단합하게 만들었던 혈연관계는 희석된 지 오래고, 주변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협력과 이타심이 이들로 하여금 동물적 본성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는 모여 사는 인간들 사이에서 늘상 일어나는 일이기에 누군가 중재를 해주어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어야 했다. (집단 내 조화를 도모하는 정치적 기구가 자연적으로는 생길 수 없었음)

때문에 농경 공동체의 사람들은 이웃 공동체와 충돌할 때 방어하고, 작황에 의존하는 공동체에 중요한 종교로 신과 소통하며, 분쟁 해결 등에 관한 문제를 처리하고, 복잡한 관개 수로 등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지도자로 선택되는 인원은 권력 자원이(그 시대에 가치 있던 재화나 능력) 풍부한 사제나 샤먼, 전사나 외교관, 관리자 등이었다. 이들은 생산활동에서 자유로운 특별한 계층을 형성하여 엘리트 귀족 집단으로 변모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은 추장으로 추대됐다. 이런 식으로 합의적 권력에 의해 사회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표자(추장)가 생겨난다. 추장은 사회적 수완과 진취성, 카리스마, 기량 그리고 능숙한 자산 운용 능력을 기반으로 충성과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이 시스템은 본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변질된다. 인간은 자극에 쉽게 반응하며, 유한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사회를 조화롭게 만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합의적 권력에 의해 대표로 추대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추장에 오른 자들은 그 지위를 이용해 무력을 행할 수 있었고 자원과 사람들을 통제한다. 초기에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행사했을지 몰라도, 권력의 정점에 선 이상 보통의 인간은 욕심을 뿌리칠 수 없었고 권력을 사유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현실화한다. 추장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본인을 추종하는 집단과 사회적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특별한 후원, 보호, 경제적 지원, 혜택을 지원해 주고 그 대가로 더 큰 충성과 지지를 얻었다. 또한 본인의 유한한 삶을 영속적으로 만들기 위해 후손들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추장의 후손들은 그 지위를 능력과 상관없이 전통적 정당성에 따라 세습하게 된다. 피지배자들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제도에 길들여지고 권력에 순응하게 된다. 길들여지는 과정은 다양하겠지만, 아래의 토막 상식에 예시를 들었다.

[토막 상식]
추장은 생산량의 일정 부분을 공물로 받고 그렇게 모인 자원을 배분한다. 또한, 공동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주도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들 사이는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가 형성된다. 추장은 일을 하지 않고도 공물을 받을 수 있으며 언제나 무언가 줄 수 있는 입장이다. (심지어 전부 내주지 않고 일부는 본인의 몫으로 남긴다.) 그리고 대체로 받는 입장에서는 마음의 빚이 생긴다. 이러한 관계가 지속되면서 마음의 빚이 누적되고 차차 권력에 순응하고 추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추장은 권력을 이용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한 건축물을 짓고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고, 사병 & 가솔 & 부하를 거느린다. 그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권력이란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게끔 한다. 그렇게 권력의 크기는 계속 커진다.

엘리트 귀족 집단의 상위 혈족 중 장남이 추장을 승계했고 그렇게 중앙 집권적인 정치 체제가 탄생한다. 추장은 정보를 독점하였고, 주변으로부터 의견을 듣기는 했지만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의 판단하에 내렸다. 추장의 명령은 더 작은 집단의 군장에게 전달된 뒤 (이들은 관료층이면서 동시에 작은 집단의 군장) 처리됐으며, 잉여 식량뿐만 아니라 각종 사치품을 향유하였다. 한몫 잡기를 원하는 젊은 전사들은 유명한 추장(전쟁 지도자)의 사병으로 합류하여 정복전을 펼치고 전리품으로 각종 물품과 노예를 획득한 뒤 엘리트 계급으로서 삶을 누린다. 처음에는 계급구조가 엘리트와 평민계급으로 단순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 정복활동을 통해 주변 지역을 복속하면서 그곳에 살던 유민들은 포로가 되거나 노예가 되었다.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자기중심성이 커진다. 때문에 집단 내의 사람이 아닌 외부인은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그렇게 계층은 다변화한다. 같은 계층 사람들끼리만 혼인을 하면서 계층의 세습이 진행되고 단단해진 계층 간의 벽은 최상위 권력자인 추장이 생각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추장 사회를 시작으로 인간 사회는 불평등 사회의 길을 걸어갔다. '분배를 많이 하느냐 안 하느냐 = 엘리트 계급이 덜 가져가느냐 더 가져가느냐'와 같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불평등이 일상화되었고 이에 대한 불만으로 나라가 전복되고 전쟁도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다시 불평등한 사회로 원대 복귀하였다.

하지만 '불평등'의 생성 자체는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물 사회를 포함하여 인간도 마찬가지로 모두 다른 유전적&환경적 조건을 갖고 태어났으며 때문에 삶의 시작 자체가 평등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장 사회 이전에는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던 불평등이 부각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불평등은 '비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모두가 식량생산에 몰두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사회는 아이러니하게도 불평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농업의 발전으로 잉여 생산량이 늘어나 집단이 갖게 되는 자원의 총량이 증가하면, 개개인이 갖고 있는 불평등한 능력 차이(유전적) & 환경적 배경 차이(기존에 갖고 있던 재산 & 부모의 서포트)로 인해 자원의 소유 정도에서 차이가 나게 되고 이는 집단 내 불평등을 느끼는 사람들의 증가를 불러온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많이 가진 자들의 자원을 빼앗아 적게 가진 자에게 나누어주면, 그런 식으로 기계적 평등을 만들어주면 건강한 사회가 될까? 일리는 있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사회가 커지고 집단 지성의 힘이 본격적으로 발휘되면, 사회가 벌어들이는 부의 총량은 생산성 향상에 따라 (기술발전이 불러온)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계속해서 늘어나는 부를 기계적으로 빼앗아 적게 가진 자에게 나누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식의 방식으로는 집단이 해체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 사회는 불평등 사회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줄여 말하자면, 부의 총량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를 통제할 중앙권력이 자원을 재분배하더라도 그 시스템 또한 사람에 의해 운영되다 보니 많은 허점을(보통 욕망에 기인한) 갖고 있고 속도가 느리다. 이 때문에 빈곤층과 엘리트층의 부의 격차는 커지고, 그 격차에서 민중은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불평등의 존재는 부정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집단이 납득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를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다. (현대 국가 관점에서)

다시 추장 사회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추장은 나름대로 이러한 불평등에 의한 민중의 반란을 막고 지지를 얻으면서 본인의 세습 권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1) 대중을 무장 해제하고 엘리트 계급을 무장시킨다.

(2) 거둬들인 공물을 대중이 좋아하는 일에 많이 사용하여 재분배함으로써 대중을 기쁘게 한다.

(3) 무력을 독점하여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폭력을 억제함으로써 대중의 행복을 도모한다.

(4) 세습 권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구성한다. 이에 따른 부수적 장점은 아래와 같다.

-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공유하면 서로 무관한 개인들로 하여금 유대감을 갖게 하여 서로를 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이데올로기나 종교는 나로 하여금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전쟁 버프)

- 제도화된 종교는 부가 엘리트 집단으로 이동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스스로 신격화하여 인간과 신의 중재 역할을 하고, 비, 풍년, 풍어를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정당화함)

추장 사회는 합의적 권력으로 시작했지만 권위가 세습되면서 무력을 독점한 뒤 점점 강압적 권력의 면모를 내비치게 된다.

초기 도시 국가 - 강압적 권력의 시작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문학사상사, 1998, 400~403p}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251p}

{아자 가트, 민족, 교유서가, 2020, 86~97p}

자산이 축적되고, 부의 총량이 증가하며, 사회적 지위의 격차가 커지면서 추장과 엘리트 집단에게 정치권력이 점점 더 집중되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권력 자원의 양은 평민들과 비교 불가한 수준이 된다. 권력 자원으로는 식량, 가축, 노예, 금속, 사치품 등 그 시대에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렇게 추장은 자원을 착취하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추장은 마피아처럼 행동한다. 종속민에게 보호를 대가로 공물을 요구했고, 심복을 이용해 지역을 감독하였으며, 하급 족장을 (엘리트 계층) 이용해서 본인의 권력을 행사하면서 합의적 권력이 아닌 강압적 권력의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이들 집단이 사는 촌락을 주변으로 농경을 업으로 하지 않는 전문 직업 종사자들이 모여살게 된다. 이미 잉여 생산량은 사회를 충분히 먹여살릴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고 (잉여 생산량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그 촌락이 위치한 지역 주변으로 환경자원 - 강, 비옥한 토지, 적절한 기후 등이 받쳐줬다는 이야기), 때문에 대장장이, 도공, 직조공, 사제, 석공, 금세공, 구리제련공, 보석세공, 음악가, 화가, 병사 등은 수요가 있는 곳 가까이 모여 살았다. 모여살면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이 생기게 된다. 사람들 간 네트워크가 활발해지면서 규모의 경제, 노동의 전문화, 지식의 확산, 교역에 의한 생산성이 향상됐고 이러한 변화는 주변 사람들을 더욱 끌어들이는 효과를 자아냈다. 또한, 하나 이상의 종교가 그 촌락 내의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이어주는 구심점이 되었으며(혈연관계를 대체한), 부가 모이는 곳이니 외부의 침략에 대한 위협은 늘 존재했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모여서 사는 사실만으로도 도시는 하나의 피난처가 돼주었다.(개활지보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을 침략하는 것은 몇 배 더 힘들다, 추후 전쟁의 양상에 대해 다룰때 자세히) 도시 자체가 이미 큰 방어선이기에, 역사적으로 보면 성벽을 쌓는 행위는 생각보다 도시가 발전한 이후에 이루어진다.

그렇게 기원전 4천 년경이 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초기 도시 국가(우루크)가 나타난다.

도시 국가의 탄생에도 과도기는 있었다. 추장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권력과 추장과 협력 관계였던 수많은 부족들은 처음에는 뜻을 같이하는 같은 편이었다. 하지만, 국가 권력의 세가 점점 커지면서 부족 엘리트들이 맡아서 했던 법과 제재, 행정 등의 기능을 자기 친족(유전적 근연도가 높은) 혹은 자기세력에게 맡긴다. 하급 족장들의 손발을 묶으니 그 부족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부족 제도와 부족적 친밀감에 덜 의존하게 되었고 도시 국가로 향하거나 그 영향 아래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기존 살던 곳을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그쪽 소속으로 전향하게 된다. (남은 부족들의 쇠퇴) 때문에 기존 부족민이 살던 지역은 국가 내의 영토-행정 단위로 대체된다.

도시 국가는 추장 사회가 갖고 있던 특징을 전보다 더 강화한 곳이었다. 정보, 의사 결정, 권력 등을 전보다 더 많이 독점하였고 정보 전달의 속도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국가는 농경민에게 농산물을 거둬들이고 각 집단에 필요한 보급품, 농사를 위한 종자와 쟁기, 가축 그리고 그 집단이 생산하는 식량을 제외한 각종 식량을 재분배하였다. 목축민에게는 고기와 털을 거둬들이고 생필품을 재분배하였으며 관개수로를 관리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거둬들인 농산물을 식량으로 배급했다.

노예의 규모도 훨씬 커진다. 국가는 공공건물과 방어시설 건축을 위한 대규모 토목 공사를 많이 진행해야 했는데, 이를 수행하는 데 기존의 주민 숫자로는 절대적인 노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대부분 전쟁 포로들로 충당했다. 문자 체계가 존재했기에, 한~두 단계에 불과했던 행정은 수직적으로(위계) 그리고 수평적으로(전문화) 변하여 각각의 부서가 수자원 관리, 조세, 징병 등을 맡았다. 국가 내부의 갈등 해결은 성문화된 법을 통해 해결한다.

국가 권력은 권력의 크기를 측정하는 모든 척도에서 추장 사회를 압도한다. 그만큼 국가의 출현은 힘의 명령에 의한 강압적인 과정이었고, 국가를 유지하는 것도 강압적인 힘이 필요했다.

[토막 상식]
권력의 크기 = 권력 자원의 양 X 권력 자원에 대한 그 시대의 가치 X 집단의 크기 X 저항하기 어려운 심리적 강제력에 순응하는 타인의 수 X 존재감 X 메세지 전달 수단의 속도

인류는 도시 국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고대 문명사회로 진입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국가와 현대적 개념의 국가는 다르게 봐야 한다. 인류의 발전은 한쪽으로 치우친 권력을 분산시키고 민중이 자유를 되찾는 과정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적 개념의 국가는 훗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나오는 18세기 역사를 설명할 때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현대적 개념의 국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은 조국의 《법고전 산책》을 탐독하기 바란다.)

부족 & 추장 사회에서 초기적 국가로의 이행

{아자 가트, 문명과전쟁, 교유서가, 2017, 320~322p}

국가의 탄생 과정이 베일에 쌓여져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인류 최초의 국가들이 하나둘씩 생기는 때가 선사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점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벌어진 사건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자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잘 알다시피 문자는 좀 더 후대에 발명된다. 문자는 자연발생물이 아니라 발명품이다. 문자의 발명은 집단 내의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충족되지 않은 집단이 문자를 갖기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초기적 국가의 형성을 고대에 남겨진 문자로 파악하는 것은 그 가정조차 불가하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구상에는 문명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채 여전히 부족 & 추장 사회를 유지하는 지역이 있다.

덕분에 가까운 과거인 19세기 초 남아프리카의 줄루 왕국이 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부족& 추장 사회가 초기적 국가로 변모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줄루 왕국 위치(우측 -Zulu empire)

이 지역의 사람들은 응구니어를 쓰는 반투족으로, 소를 키우며 이동식 농업을 하며 살았다. 여러 개의 추장 사회가 존재했으며 친족 관계에 기반한 소규모 사회였기에 하나의 중심 권력은 없었다. 하지만, 19세기에 딩기스와요(Dingiswayo)라는 추장이 (둘째 아들인 자신을 경계하던 음테트와Mtetwa족 추장(아버지)을 피해 떠돌이 생활하면서 백인들에게서 다양한 무기 지식을 공유 받고 아버지 사후 음테트와의 추장이 됨) 강력한 무력에 기반한 온건책으로 주변 추장들을 복속해 나간다. 기존의 추장들이 지배하는 영역은 그들의 씨족의 영향력 아래 그대로 두었고 대신, 젊고 새로운 추장들을 자신이 지정하여 해당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다. (새로운 추장은 딩기스와요에게 지위에 대한 빚을 지게 됨)

각 지역별로 있던 민병대는 해산 시켰고, 여러 지역의 부족민을 섞어서 군대를 만들고 각 부대의 지휘관을 임명한다. 이들을 정복 전쟁의 전리품을 챙기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딩기스와요의 친위대가 되어 권력을 강화시켜준다. 그렇게 딩기스와요는 30개 이상의 부족을 정복하면서 나라의 틀을 잡아나간다.

1817년 딩기스와요가 다른 부족민의 계략 때문에 암살당한다.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있었고 군 지휘관 중 하나이자 딩기스와요의 심복이었던 줄루족의 샤카가 그 권력을 차지한다. 때문에 이 왕국은 줄루 왕국이라 불리게 된다. 샤카는 딩기스와요의 전법을 보완하여 세력을 넓혔고 어느덧 자기 휘하의 군대가 수만에 이른다.

그렇게 영토를 불려 영국의 크기에 맞먹는 영역을 차지하게 된 샤카는 수십만의 국민을 통합하기 위해 공동 의례를 주재하여 권력을 공고히 한다. 1828년 그의 이복동생에게 암살당하고, 그의 이복동생도 1840년 또 다른 이복동생(음판데)에게 암살당한다.

음판데는 왕국을 다지는데 능했으며 부족의 땅을 국가의 행정구역으로 바꾸고, 자신의 아들들을 주요 보직에 앉힌다. 자신의 딸들은 지역의 귀족과 족장들에게 시집보내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줄루 왕국이 보여주는 의의>

이런 식의 국가 형성은 앞으로의 글에서 자주 보게 될 것이다. 패턴으로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독립적이던 예전의 추장 or 족장들을 정복과 강압(군사적 힘), 포섭과 영입, 외교를 통해 왕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 체제에 통합시킴

(2) 새로운 엘리트 집단이(왕과 귀족) 친족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위계 서열상 상위에(제사장, 족장, 족장의 외척) 위치하게 만든 후 피지배 계층을 향한 권력을 행사, 친족 네트워크들 끼리는 이익을 배분.

(3) 집단 내의 소모적 내부 경쟁을 피하기 위해 지배를 제도화함 (유력 지주의 땅을 빼앗아 국가의 것으로 귀속, 보호비 명목의 돈을 세금과 공물로 바꾸어 징수, 신의 뜻에 따르는 왕을 자처하고 왕이 직접 국가 의례를 관장)

(4) 시간이 흐르면서 군대, 사법, 종교의 최고 권한은 엘리트 집단이 장악하고, 효율적 통치를 위해 관료제 도입

(5) 종교와 문화가 융합하여 공동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주민들을 최대한 더 끌어들여(정복 전쟁)

영토를 확장

마무리

보통의 역사책은 도시 국가의 탄생 과정을 과하게 축약해 놓았다. 통상 '잉여자원이 생겼고, 계급이 분화되었고, 기득권이 탄생했으며, 그로 인해 국가 형태의 집단이 최초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나타났다'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과도한 축약은 본질을 왜곡하기에 안 쓰느니만 못하다. 때문에, 각 과정의 연결고리인 권력이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고, 권력 네트워크(장)의 크기를 결정하는 요소에 입각해 사회 종류별 변화 양상을 따라가 보았다. (자연스럽게 도시 국가로 귀결되도록)

다음글은 챕터를 하나 넘겨서 고대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참조한 서적>

  • 권력이란 무엇인가(한병철, 문학과지성사, 2016.06.29.)
  • 총 균 쇠(재레드 다이아몬드, 문학사상, 2013.03.04.)
  • 민족(아자 가트, 교유서가, 2020.08.21.)
  • 지금 다시 계몽(스티븐 핑커, 사이언스북스, 2021.08.31.)
  • 문명과 전쟁(아자 가트, 교유서가, 2017.09.01.)
  • 침팬지 폴리틱스(프란스 드 발, 바다출판사, 201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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