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9 - 신석기 시대 (인도)

공식적인 기록 상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자(23년 중순 기준 약 14억 3천만) 합계 출산율이 2명을 넘어서고, 국민 평균 연령 27세에 인구의 47%가 25세 미만인 젊음의 나라 인도는 근세 세계사의(르네상스 이후)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나라이다. 이번 파트에서는 그러한 인도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인더스 문명이 발현되기 이 전의 이야기) 인도의 시작이라 하면 인더스강이 떠오른다. '인도'라는 말 자체가 영어인 India를 한글로 표현한 것이고 이 말 자체는 힌두(Hindu)에서 유래한 것인데, 힌두는 산스크리트어 (Sindhu)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원래는 인더스(Indus) 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재는 파키스탄 영토를 가로질러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인더스강은 (자세한 내용은 부록의 인도 & 파키스탄 지리 참조) 인더스 문명의 요람이자 기나긴 역사를 간직한 강이다. 이 지역에 자리 잡았던 사람들의 신석기 시대 풍경을 살펴보자.

메르가르의 점토 여성상을 모티브로한 예술 작품, 출처:  https://www.thealephreview.com/post/to-mehrgarh-and-back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부터 분화하여 11~5만 5000년 전 북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이들이 인도 아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것은 9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이때는 중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넓은 인도 땅에 구석기인들은 멀리 퍼져서 살았고 크게 두부류로 나누자면 인도 아대륙의 서북부(지금의 파키스탄) 유적지와 갠지스 중하류 평야의 유적지로 나눌 수 있다. 이들이 이곳에 모여서 살았던 이유는 환경적 영향이 큰데 예나 지금이나 인도 북부의 갠지스 평원과 인더스 계곡은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비옥한 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착생활부터 생산경제까지의 문화 발전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인도의 북부이다. (인도의 남부 데칸고원과 동&서 고츠산맥 쪽은 아열대성 기후이고 북부가 발전한 이후에 북부와 비슷한 변화를 보임)

인도의 대표적 신석기 시대 문화에 해당하는 메르가르 문화는 이란고원의 동쪽에 위치한다. 이들의 위치나 문화적 특징으로 볼 때 서남아시아의 자그로스산(이란고원의 서쪽) 유역의 문화와 비슷한데 그 이유는 서남아시아의 영향이 동쪽으로 파급됐기 때문이다. (고대 시대까지 모든 문화의 원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고 이곳의 지식을 전수받아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형태를 많이 띤다)

그래서 어찌 보면 데칼코마니 같다. 서남아시아의 자그로스산 기슭에서 토기 문화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적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사람들이 점점 내려와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에서 관개 농업을 하는 것처럼, 인도의 신석기인들도 이란고원의 동쪽인 토바 카카르산 & 술라이만산 기슭의 산간에 위치한 평지(볼란 고개)에서 그들의 문화를 시작하고 점점 인더스강으로 내려와 관개 농업을(하라파 문화) 시작한다. 그렇다면 메르가르 문화의 특징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이란고원(분홍색 영역)
메르가르( Mehrgarh)  문화 위치, 출처:  https://www.mapsofindia.com/india/
 

 

메르가르 문화(Mehrgarh culture) 1기- 기원전 7,000 ~ 5,500년

{쑨룽지, 신세계사1, 흐름출판, 2020, 96p, 109p}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626~627p}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동쪽(이란고원의 서쪽)에서 자르모 문화가(기원전 7,090 ~ 4,950년) 꽃피우던 시기에 이란고원 동측에는(토바 카카르산 & 술라이만산 기슭) 메르가르 문화가 시작된다. 메르가르 문화는 인도의 생산경제가 시작된 최초의 유적지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이곳에서 생산경제가 시작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환경적 이유도 한몫하는데, 산기슭은 평지와 다르게 강수량이 받쳐주었기에 초기적인 형태의 농경과 목축이 생길 수 있는 환경적 기반이 되었다. 이곳은 서남아시아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선토기 문화가(토기 사용 이전 문화) 먼저 나타난다. 따라서 메르가르 1기 문화 중 선토기 문화는 1A(기원전 7,000~6,000년) 토기 문화는 1B(기원전 6,000~5,500년)로 나누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사각형의 가옥에 방이 4개가 존재했으며 롬흙을(모래 50~80%, 실트 50% 이하, 점토 20% 이하의 비율로 섞여 있는 흙) 이용하여 벽돌을 만들고 그 롬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다. (서남아시아의 PPNB시기와 비슷) 가옥 내부는 롬흙으로 바닥을 깔았고, 불 피우는 장소, 저장 장소와 용기, 뼈와 돌로 만든 세석기 도구 등이 발견된다. 무덤의 형태는 서남아시아의 초기 문화들과 마찬가지로 집 바닥이나 각종 쓰레기를 버리는 구덩이 아래에 위치한다. 부장품으로는 장신구, 구슬, 손도끼 등이 들어있었다. 놀라운 발견으로는 무명실이 발견되었다는 것인데, 이는 최초로 면직물을 방직했던 증거이다.

1B 시기로 넘어가면 1A 시기 때는 발견되지 않던 토기들이 발견된다. 공예, 건축, 농업 및 장례 관행의 유사성은 메르가르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일종의 연결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식량으로는 에머밀과 외알밀을 재배한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재배종 및 야생종의 6줄 보리, 야생 인도 대추 (Zizyphus spp) 및 대추야자( Phoenix dactylifera)도 먹었다. 각종 동물들의 뼈도 발견되어 양, 염소, 사슴, 영양, 돼지, 물고, 소, 코끼리 등을 동물성 식량으로 섭취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중 영양을 가장 많이 먹었고 그다음으로는 염소를 많이 먹었다. (염소는 가축화를 시도함)

메르가르 문화(Mehrgarh culture) 2기- 기원전 5,500 ~ 4,500년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630p}

메르가르 문화 2기가 되면 보리와 밀을 기반으로 하는 농업이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식량 생산의 90%를 담당) 또한 양과 염소의 가축화가 성공하였고(발굴되는 동물들의 뼈 크기가 작음 --> 가축화의 징표) 회전반을 쓸 줄 알았기에 토기들이 더 많이 발견된다. 주거지는 이제 단순 4개짜리 방이 아니라 방의 개수가 더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집 안에는 곡물 저장 용기가 더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작물 생산량이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 내부에는 개별 작업 구역이 있어서 세석기가 많이 출토된다.

건물들의 외관 형태도 다양하여 작은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곡물 저장 시설의 경우 문이 없었다. 어떤 건물은 넓은 개방형 작업 공간으로 구슬 제작 등의 공예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구리로 만든 물건들이 발굴되는데 주변에는 구리 광산이 없기 때문에 원거리 교역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메르가르 문화(Mehrgarh culture) 3기- 기원전 4,500 ~ 3,500년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630p}

생산량이 늘어나고 인구가 증가하니 거주지의 크기도 따라서 증가한다. 최대 100헥타르에 달하게 되는데 이는 100만 제곱미터 (30만 평) 정도 된다. 이 거대한 지역은 주거지역, 물자 저장 지역, 수공예 지역 등으로 나눠져 있었다.

거주지 내의 수공업이 더욱 발전하고 전문화되는데, 이는 지역 내의 위계질서와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특징은 무덤에서 알 수 있는데, 부장품의 규모가 유달리 크고 무덤 안 유골의 치아는 치과치료를 받은 흔적이 발견된다.

메르가르 토기

 

메르가르 문화(Mehrgarh culture) 4~7기- 기원전 3,500 ~ 2,500년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630p}

이 기간 동안 메르가르 문화 내의 각 지역은 운하로 연결된 중소 규모의 조밀한 거주지로 나뉘었다. 일부 정착지에는 작은 통로로 분리된 안뜰이 있는 주택이 발견되었고 방과 안뜰에 있는 큰 저장 항아리로 미루어 보아 지속적으로 잉여 생산량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메르가르 문화 사람들이 물을 다룰 줄 알았기 때문인데, 물과 위생 시스템을 고려한 한 그들은 위생, 운하 시스템, 댐 건설, 우물, 물탱크, 농업, 무역, 하수도 및 비즈니스 시스템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물에 대한 지식은 파키스탄 중부 펀자브와 신드 지방의 인더스 계곡 문명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토기와 공예에서 점진적인 양식 변화를 보였다. 부싯돌 냅핑, 무두질, 확장된 구슬 생산과 같은 공예 활동과 함께 상당한 수준의 금속 가공, 그중에서도 구리 가공이 뛰어났다. 유적지는 기원전 2500년경까지 계속 사용되다가 그 시기 이후 발루치스탄 지역이 건조해짐에 따라 이곳의 주민들은 더 비옥한 인더스 계곡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르가르 문화 상상도, 출처:  https://www.trangotour.com/2007/10/mehrgarh-earliest-known-agricultural.html
메르가르 점토 여성상
출처:  https://humanjourney.us/ideas-that-shaped-our-modern-world-section/connecting-with-the-gods/early-civilizations-harappa/?hilite=Harappan

기원전 3200년(5.2ka event) 인도 아대륙에 뿌려주는 몬순 비의 양이 적어지면서 발루치스탄 지역이(메르가르 문화가 위치하던) 건조해졌다. 한순간에 이곳에 살던 이들이 모두 살던 곳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버티지 못한 유민들은 인더스 계곡으로 향한다.

건조해지기 전 인더스 계곡과 사라스바티강 (가가하크라강 - Ghaggar-Hakra river을 다른 말로 사라스바티강이라 하며 지금은 메말라서 없어짐)은 몬순 시즌에 홍수가 나서 그 주변부에 사람이 정착해서 살기 어려웠다.(나일강이 건조해지기 전에 그 주변에 살기 힘들었던 것처럼) 하지만, 인도 아대륙의 몬순이 약해지니 물길은 덜 거칠어졌고 사라스바티강의 범람은 예측 가능해졌으며 강둑을 따라 농사를 짓는 것이 가능해졌고 때문에 이 지역으로 많은 이민을 촉발했다. (메르가르 문화 등지에서 이곳으로 이민)

물 관리 기술에 능했던 이민자들은 관개농업에 있어 안정적이었으며, 천 년 이상 동안 집약적인 농업을 이룩했다. 이들은 후에 하라파 & 모헨조다로 문화, 즉 인더스 문명을 만드는 주민들로 기록된다. 이들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고대 문명과 달리 강제 노동이나 노예 제도 없이 거대한 문명을 만들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기원전 3,300년을 기점으로 초기 하라파 문명 (인더스 문명)이 시작된다.

 

마무리

흔히 말하는 4개 고대 문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기 전 그 문명들의 토대가 되는 신석기 시대 역사만 훑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역사책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는 선사의 영역이다 보니 여러 책&논문을 통한 교차 검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설명이 맞는 것인지 의아할 때도 있었다. (그러한 부분은 과감히 지움) 고대 문명 이전의 세계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마무리이지만 내용에 대한 보충도 할 겸 곁가지 주제를 몇 개 더 다루려 한다.

 

<참조한 서적>

  •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헤르만 파르칭거, 글항아리, 2020.03.20.)
  • 신세계사1(쑨룽지, 흐름출판, 2020.01.20.)

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행했던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gb145/223138477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