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2 - 구석기 시대

고인류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마 인간이 몇 만 년 안에 우주로 진출하여 다른 행성에 정착한다 하더라도 고인류의 역사는 여전히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그러기에 절대 무시하고 건너뛸 수 없는 챕터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나도 길고 방대하기에 머리에 잘 와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 최대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짧으면서도 무게감 있게 구석기 시대를 정리해 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생명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이고 고인류도 이 문제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이들이 어떻게 발전하며 살았는지를 알아보려면 어떻게 식량 확보 방식을 개선하며 살아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식량 확보 방식의 개선은 다른 말로 하면 에너지 확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이다. 우주의 유일한 화폐인 에너지는 인류진화의 원동력이자 사회 진화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에너지를 잘 확보할 수 있었는지 그 족적을 살피다 보면 역사를 더 넓은 시야에서 관망할 수 있다. 하여, 이 챕터의 마지막에는 구석기 시대를 에너지 관점에서도 짧게 살펴보려 한다.

출처:  https://www.history.com/topics/pre-history/stone-age

(다음 설명에 앞서 자연과학 카테고리 글인 Part5.5 ~ Part7의 빙하기와 인간의 뇌 + 의식의 발전을 미리 읽으면 이해가 더 빠를 수 있다.)

석기 시대 이전 간단 요약

{박문호,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김영사, 2022, 220~224p}

{리사 펠드먼 배럿,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더퀘스트, 2021}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178p, 181p}

{바츨라프 스밀, Energy and Civilization, MIT Press, 2018, 22~23p}

{빌 브라이슨, 바디 우리 몸 안내서, 까치, 2020, 242~244p}

석기 시대 이전 인류의 조상은 밀림 생활에 적응하면서 시신경이 발달하였고 나무 위에 앉아 과일과 곤충을 섭취하면서 두 손의 발달이 이루어진다. 약 350만 년 전 고인류의 식량에 변화가 생긴다. 수수와 같은 식물(더 건조하고 온도가 높으며 질소원이 부족한 곳에서도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열대 혹은 아열대성 식물이며, 영양가가 더 높음, C4식물이라고도 함)을 섭취하기 시작하고 이는 뇌 용량의 증가와 대뇌피질의 발달을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인간에 가까울수록 커다란 뇌의 공간이 필요하기에 이마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기초적인 보행 능력은 골반뼈로 추정했을 때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부터 가능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직립보행 자체가 다른 포유류들과 비교하여 먹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해주었거나, 포식 동물로부터 빠르게 도망칠 수 있게 하는 능력은 아니었고 오히려 근골격계 손상 위험도를 증가시키고 퇴행성 뼈 질환, 골다공증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립보행이 발달한 이유는 사족 보행보다 에너지가 덜 들기 때문이다. 직립보행은 침팬지의 사족보행보다 에너지를 75% 가까이 아낄 수 있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번식 & 생존)을 낼 수 있었다면 당연히 자연선택되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직립보행 자체가 사바나 기후로 바뀐 아프리카의 기후 때문에 생겨났다는 가설이 있었지만, 삼림에서도 직립보행했던 뼈가 발견되면서 해당 가설은 무너졌다. 이후 아프리카가 건조해지고 밀림이 점차 사라지면서 이미 기초적으로 갖고 있던 직립보행 능력은 식량 확보와 생존을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되었고 자유로워진 두 손의 발달은 더욱더 가속화된다.

이 밖에도 해부학적 구조에 많은 변화가 찾아온다. 유인원들의 머리뼈 뒤쪽은 목 쪽에 붙어 있지만 인간은 머리뼈의 가운데가 목에 붙어 있다. 그리고 목이 더 길어진다. 무릎은 커지고, 허벅지의 뼈가 골반에서 무릎까지 내려올 때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때문에 인간은 땅 위를 좌우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고 에너지도 덜 쓴다. (유인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뒤뚱뒤뚱 걷게 되고 인간보다 에너지를 4배 더 쓴다) 엉덩이에는 걷는데 필요한 큰볼기근이라는 거대한 근육이 있고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탄력을 주기 위해 발은 아치 형태로 되어 있고 무게를 분산시키기 위해 척추는 휘었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불의 사용으로 식량들을 소화하기 좋게 변형시켰기에 인간은 가면 갈수록 치아가 작아지고 턱도 약해진다. 입안의 앞뒤가 짧아지니 더 짧고 둥근 혀를 가지게 되었고 후두가 목 아래쪽에 놓이면서 말을 할 수 있는 발성 기관을 갖추게 된다. (걷기와 말하기는 비슷한 시기에 진화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

또한, 이 무렵 사바나 기후가 만들어낸 과도한 열을 효과적으로 발산하기 위해 몸의 털도 서서히 사라진다. (직사광선을 받는 머리 부분만 털이 남음) 땀샘은 두 배로 늘어났는데, 이 덕분에 인류의 조상은 온도에 민감한 뇌가 대폭 커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출처: 코스모 사피엔스 664p (우측에서 좌측 순으로)

전기 구석기 시대 - 대략 270 ~ 30만 년 전까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35~58p}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179p}

동아프리카 올두바이 협곡에서 인류 최초의 인공물(올도완)이 발견된다. 자갈을 내려쳐 뾰족하게 만든 이 인공물이 제작된 시기는 가장 이른 것은 약 270만 년 전으로 추정되며 초기의 호모속인 호모 하빌리스, 호모 루돌펜시스사이에서(일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포함) 제작이 되었을 거라 추정된다. 이는 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이 시대부터는 팔이 짧아지고, 창자와 이가 짧아지며 근육의 양이 줄어든다. 또한, 두개골의 용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토대로 우리는 섭생 방식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 진화는 기술 진보에 따른 문화 발달에 근거한 것이기에 아래와 같이 다방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PRINT/1016502.html
[토막 상식]
뇌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쓰는 기관이며 현생 인류의 뇌는 휴식 상태일 때 전제 에너지의 25%를 사용한다. (반면에 유인원은 8%) 뇌 용량의 증대는 인류가 에너지 자원을 뇌에 더 투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출처: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27p}
따라서, 뇌는 다른 기관의 신진대사 양을 줄이지 않으면 늘어난 용량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기에, 뇌 크기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창자 크기의 축소를 불러온다. 왜냐하면 신진대사를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기관은 창자이고, 창자는 섭생 방식에 따라 쉽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자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본인 몸무게 대비 무게 비중이 작다. 작은창자는 고품질 & 고에너지밀도(고기&견과류)의 음식을 섭취하는데 유리하다.
<뇌용량 차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440cc
파란트로푸스 - 519cc
호모 하빌리스 - 640cc
자바 호모 에렉투스 - 930cc
중국 호모 에렉투스 - 1029cc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 1400cc
호모 사피엔스 - 1350cc

<섭생 방식>

이전의 인류가 섭취하던 식량은 대부분 식물성(씨앗과 견과류)으로써 지방, 단백질, 인 성분이 충분하지 않았다. (뇌가 발달하기 위해 필요한 성분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인류는 식물성 식량뿐만 아니라 썩은 짐승의 시체, 맹수들이 먹고 남긴 고기 등을 먹거나 부상당한 대형 짐승들을 마무리해서 먹기 시작했다. (호모 하빌리스부타) 고기는 식물성 식량 대비 단백질, 지방, 인 성분이 풍부했고 동물의 내장 섭취를 통해 비타민과 효소를 흡수할 수 있었다. 뼈를 조직적으로 깨부수어 영양가 많은 골수를 꺼내 먹기도 하였다. 이러한 동물성 식량의 흡수로 인해 뇌 발달이 가속화된다.

뇌 발달이 가속화되면서 도구의 발명이 일어나고 호모 에렉투스에 와서는 먹다 남긴 고기가 아닌 직접 사냥을 통해 고기를 획득하면서 육식 위주의 식사를 선호하게 된다. 이후 불을 이용해 식량을 익혀 먹으면서 소화기관에 부담을 줄여주었고 육식 경향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도구>

이전의 인류가 가진 턱뼈는 오랫동안 식물성 식량을 잘게 부수기 좋을 정도로만 진화하였다. 때문에 살코기를 물어뜯을 수 없었고 이에, 자갈을 내려쳐 면을 날카롭게 만든 도구를(올도완 석기) 사용하여 고기를 잘게 절단하였다. 이러한 올도완 문화 내에서도 발전을 거듭하여 자갈을 이용해 만든 도구는 줄어들고 뗀석기가 등장한다.

뗀석기는 한 손에 돌을 들고 다른 돌을 내려쳐 의도적으로 모양을 내는 부산물(본체 + 그 파편들)을 뜻하는데 인류가 점점 더 목적 지향적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도완 시기 때 거주지 주변을 보면 위험한 맹수들의 잔해 또한 발견이 된다. 뗀석기로는 이런 짐승을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나무로 만든 창이 분명 존재했을 거라 추측하지만 나무는 유기물이기에 그 흔적이 남지 않아 유물로 많이 발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기 구석기 시대의 마지막쯤에 사용됐던 창의 형태로(습지에서 발굴되어 유기물이 보존되어 있음) 봤을 때는 투척용 혹은 찌르기용 창의 사용이 그 이전부터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올도완 문화는 아프리카에서만 국한되다가 점차 유럽과 아시아로 퍼지게 되는데 이때는 더 크고 정확하게 모서리를 떼어내어 만든 최초의 양면 주먹도끼가 발달되어 나오고 이를 아슐리안 문화라 특징짓는다. 정교해진 도구를 이용하여 2차 가공을 위해 사냥한 동물들의 잔해를 더 잘게 자를 수 있게 된다.

출처:&nbsp; https://news.stonybrook.edu/facultystaff/stony-brook-scientists-discover-oldest-stone-tools-on-record-2/
아슐리안 주먹도끼, 출처:&nbsp; https://www.britannica.com/technology/history-of-technology/Technology-in-the-ancient-world

최초의 불을 사용한 흔적은 올두바이에서 발견되었고 그 시기는 140만 년 전이다. 이후 100만~50만 년 전이 되어서야 그 흔적이 많아진다. 불의 사용을 기점으로 인류는 동물과 완전히 분리된다. 불은 인간의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주었고, 식량 보관을 용이하게 하였으며, 맹수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또한, 빛과 열을 동시에 제공해 주었고 이를 토대로 인류의 활동 영역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이렇게 동물성 식량과 불의 사용은 인류가 발전하게 되는 중요한 기초 요소가 된다.

<생활상>

동물과 인간 모두 물을 필요로 하기에 물가 근처로 모이기 마련이다. 사냥을 위해 이들은 물가에서 원형 움막을 설치하였고, 야영을 통해 동물을 사냥했다. 동물들의 뼈 잔해 기록을 토대로 보았을 때 대부분 속도가 느린 대형동물들만 사냥하였으며, 발 빠른 동물들은 사냥하지 못했다. 또한, 보관방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냥한 고기가 부패하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장기 보관이 가능한 식물성 식량의 채집도 병행하였다.

추후 불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되면서 포획한 고기의 보관 기간이 늘어난다. (훈제하거나 익힌 뒤 보관) 이러한 보존 방법의 진화는 식량 조달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식량 공급처를 찾아 헤매는 에너지를 줄여주어 여분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아슐리안 유적에는 뼈에 칼자국이 보인다. 이를 통해 이들이 동물의 가죽과 힘줄을 2차 가공하여 의복을 만들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의복을 위해서는 무두질과 건조의 과정이 있어야 하기에 그 당시 인류가 지식, 경험, 숙련 면에서 점진적이지만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뇌과학적으로 언어의 탄생이 어떠했는지는 '자연과학 카테고리 글 Part7 언어의 탄생' 부분에서 설명하였지만(아래 토막 상식 참고) 언어가 탄생한 장소를 특정한다면 아마 야영지에서 피운 불 앞일 것이다. 이들은 불 앞에서 다음날 있을 사냥에 대해 논의했을 것이고, 도구를 만드는 법을 전수했을 것이며, 같이 사냥한 식량을 먹으며 활발한 의사소통을 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결속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에렉투스까지 뇌 용량은 두 배 이상 급증하였기에, 언어를 발달시킬 능력은 충분했을 것이다.)

스티븐 핑커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거와 현재의 구성원이 힘들게 발견한 사실을 집단 내에 공유하게 되면서, 이들은 결국 홀로 살아가는 종보다 훨씬 영리해져갔다."

 

[토막 상식]
언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박문호,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김영사, 2022, 233p~235p, 277p}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박문호 박사님의 책 내용 중 일부를 그나마 이해하기 쉽게 순서대로 정리했다.
반성적 의식이 만들어낸 이차적 능력 중 단연코 제일은 언어이지 않을까 싶다. 초기의 인류 조상은 정보 교환을 위한 효율적인 수단의 필요성 때문에(+높은 사냥 성공률) 얼굴과 손의 제스처를 사용했고 그다음 신호 언어, 단어 순으로 사용을 했다.
(1) 대뇌피질의 발달 중 연합피질(감각연합피질 + 운동연합피질)이 가장 드라마틱 하게 확장됐다. (경험과 학습에 따라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200만 년 동안 두 배로 확장된 부분은 연합피질)
(2) 감각연합피질은 시각+청각을 처리하는(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가 결합) 영역이며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곳이며, 현재 경험을(감각 이미지) 이전 기억(기억된 감각 이미지)과 비교하면 지각이 일어남 (지각이 기억임) 인간은 지각된 것만 기억하고 기억된 것만 지각한다. 이로써 생존에 중요한 사건과 장소에 대한 주의력과 기억이 강화됐다.
(3) 운동연합피질은 행동을 계획과 실행 두 단계로 나누어 결정하며, 이로 인해 반사적 행동을 억제하고 경험과 기억에 근거해서 행동하게 된다. 우리는 기억을 바탕{감각연합피질의}으로 운동 결과를 예측하면서 운동 출력을 계획하기에 즉각적인 움직임보다는 목적지향적 행동이 강화되었다. (운동계획 과정을 의식하는 현상을 우리는 '생각'이라 부른다.)
(4) 우리가 깨어있는 낮에 새롭게 경험한 기억이 해마에서 생성되었다가 밤이 되면 대뇌피질로 이동해 장기기억으로 저장되는데, 장기기억으로 변환되려면 과거의 유사한 기억과 결합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경험을 통한 이전 기억들이 존재해야만 장기기억이 된다. 저장된 장기 기억들은 (이미지 속) 공통 패턴을 범주화하여 다양한 개념들이 생긴다.
(5) 제스처의 탄생: 직립보행을 하는 인류의 선조는 두 팔이 자유로워졌고, 이 팔을 통해 도구도 만들고 & 사냥도 했지만 손 운동 신경 회로에 기억 회로가 연결되면서 자신의 의도를 손가락 운동을 통해 전달하면서 손짓 대화가 시작됐다.
(6) 발화: 대뇌 기저핵은 손가락 운동 영역과 입술 운동 영역이 중첩되어 있는 곳이기에 제스처를 통해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자 입술의 움직임도 많아짐. 입술을 움직여 음성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발달하면서 감정 신경 회로가 발음 운동 회로에 연합하면서 목소리에 풍부한 감정을 추가하는 능력이 생겼다. (감각연합피질의 음성 정보가 운동연합피질의 발성 회로와 연결되면서 언어가 출현했다.)
(7) 언어적 사고의 확장: 이미지의 단위로 저장된 기억들은 하나의 장면을 생성하였다. 기억된 그 장면 안에는 사물들과 자신의 행동이 존재하였고 이를 표현하는 단어가 생기기 전부터 그 범주에 대한 개념이 머릿속에 생겼다. 이러한 개념 이미지들이 단어 이미지로 변환되고(음소를 연결해) 단어끼리 연결해서 이미지를 표현하면서 짧은 문장의 구조를 갖추어 갔다. 언어적 사고가 출현한 것은 약 1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논리, 추론, 계산 등이 언어적 사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한 소통으로 개념과 의미를 공유하는 부족 사회를 이루었다. 언어와 상징은 외부에서 입력되는 감각자극이 아니라 뇌 자체에서 생성되는 자극이다. 그래서 뇌 속의 정보는 상징으로 전달된다. 대뇌 신피질의 일차 영역에서는 외부 환경에서 직접 입력되는 자극을 처리하지만, 연합피질에서 생성하는 정보는 개념화된 언어다. 상징과 언어는 뇌가 스스로 만들어낸 자극이다.
언어와 상징은 실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뇌가 스스로 만든 제2의 자연이다. 이를 가상 세계라 한다. 인간 뇌 작용은 언어 개념을 통해 물리적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를 출현시켰다. 언어를 통한 개념과 상징의 세계는 의미의 공간이다. 인간 뇌의 연합피질이 창출하는 언어의 세계는 가치에 근거한 의미의 세계지만, 자연 속에는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는 인간이라는 종과 더불어 출현하는 인간 현상 그 자체다. 물리적 우주에 인간은 존재하지만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 속의 인간은 생물학적 신체의 일부분인 뇌의 작용으로 물리, 생리, 심리 단계가 동시에 작동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존재가 되었다.

<전기 구석기 최후의 인류 -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대략 180만 년 전에 처음 등장하여 전기 구석기 시대를 장식한 호모 에렉투스는 80만 년 전에 들어서는 키가 현생 인류와 비슷해지고, 뇌 크기는 우리의 70% 정도가 된다. 완전한 직립보행을 구사했고 팔이 짧아져 나무에 매달리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귀에는 뛰고 달릴 때 균형을 잡아주는 반고리관이 있어 이동하는데 용이했다. 호모 에렉투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 아시아 등지로 퍼져 나갔으며 대부분 기후의 변동에 따라 사냥감의 서식지가 바뀌면 그들을 따라가면서 함께 이동하였다.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이들의 피부색은 털이 적어지면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짙게 변하였다. (자외선은 피부 암을 일으키고 엽산을 파괴하여 불임을 야기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밖으로 나간 인류는 다시 피부색이 옅어진다. (비타민 D를 합성하려면 자외선이 필요한데 피부가 짙으면 불리함)

80만 년 전 큰 기후변화가(과거 빙하기와 간빙기가 교체하는 주기가 약 4만 1000년으로 짧았는데 약 100만~80만 년 전후를 기점으로 10만 년 주기로 바뀐 것) 있었다. 이로 인해 빙하기는 더 오래 지속됐고 기온은 더 많이 떨어졌다. 80만 년 전후로 아프리카 대륙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이러한 기후에 살아남은 일부는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분화된다. 하이델베르겐시스는 더 다양한 범위의 식량 자원에 적응하였고, 덕분에 유럽과 동아시아의 먼 지역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출처: https://www.science.org/doi/full/10.1126/science.291.5509.1722?sid=9e827f93-d06a-49a3-9466-ff3cfdf5f6da ​

중기 구석기 시대 - 대략 30 ~ 4만 년 전까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 호모 사피엔스)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59~76p}

{데이비드 크리스천, 빅 히스토리, 웅진지식하우스, 2022, 191p}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 혹은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로의 발달은 아직 밝혀지지 않는 사실이 많지만 중기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호모속임은 분명하다. 이들의 섭식과 생활사에는 호모 에렉투스 후기 형태의 전통들이 많이 녹아들어 가 있으며 여기에서 더 진일보하여 유럽의 혹독한 빙기를 이겨냈다. (15만 년 전에는 독일의 베를린 남단까지 빙상이 확장되었다)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가 거주하던 범위는 아래와 같다. 네안데르탈인의 문화는 프랑스의 르 무스티에(Le Moustier) 지역 근방에서 나온 유물을 근거로 삼기에 무스티에 문화라 불린다.

출처:&nbsp; https://en.wikipedia.org/wiki/Neanderthal_extinction#/media/File:Neanderthal_distribution.jpg
 

<섭생 방식>

식물성 식량에 대한 지식은 풍부해졌지만 한랭한 기후로 인해 수급 변동성이 컸기에, 동물성 식량 위주의 식단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유적지에서 나온 잔해를 보면 조금 더 다양하게 조류, 연체동물, 어류도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들의 화석에서 발견된 치석을 분석했을 시 식물성 식량인 대추야자, 콩, 씨앗류, 야생 과일, 견과류, 버섯, 구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치석의 침착된 녹말은 열을 이용해 가공하였음을 말해준다.

<도구>

우거진 수풀 속에서 대형 야생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투창과 찌르기용 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석기 제작에서도 근본적인 변화가 보이며 이는 무스티에 문화라 불린다. 우선, 그 지역에서 나오는 암석뿐만 아니라 멀리서 구해야만 하는 암석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원거리 거래가 있었음) 또한, 암석의 성질을 이해했기에 목적에 맞게 암석을 골라 정교하게 다듬었다. (르발루아 기법 - 원 재료가 될 돌의 겉면을 한 타 한 타 쳐서 원하는 목적에 맞게 만듦, 이를 이용해 긁개, 첨두기, 칼등을 제작) 또한, 이 시기에는 접착제를 사용하여 석기와 목재를 안정적으로 고정시켰기에 첨두기(돌로 만든 찌르기용 날)와 목재를 연결시켜 더욱더 강력한 창으로 활용하였다.

 
르발루아 기법, 출처:&nbsp;https://ko.wikipedia.org/wiki/%EB%A5%B4%EB%B0%9C%EB%A3%A8%EC%95%84_%EA%B8%B0%EB%B2%95,&nbsp;https://theurbanprehistorian.wordpress.com/2019/02/16/levallois/
 
출처:&nbsp;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69p

<생활상>

사냥 후 얻은 동물의 사체바로 토막 내어 먹거나 남은 것은 운반하여 보존 처리를 할 줄 알았다. 이들의 업무는 분업화되어 있었기에 도축장, 석기 가공 장소 등이 분리되어 있었다. 스페인의 유적 층에서는 유색 안료도 발견되었고, 구멍이 뚫린 늑대와 순록의 이빨과 뼛조각도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장식물과 치장에 대한 미적 개념이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

네안데르탈인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호모 에렉투스와 마찬가지로 언어를 활용하여 사냥에 대한 역할 분담을 하고, 인공물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야영지 주변에서 의사소통을 하였다. 네안데르탈인에게서는 설골(후두의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교한 발성에 필요한 뼈 골격)이 발견되고 그 형태는 현생 인류와 비슷하다.

네안데르탈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현세의 삶과 사후 세계를 분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발견된 고분들의 대다수는 형태에 통일성은 딱히 없지만(구덩이에 시신을 묻는 정도이며, 방향 & 위치 & 내부 설비에 대한 정돈은 딱히 없음) 일부 무덤들에서는 돌판으로 덮여 있는 것도 있고, 머리 아래 돌을 받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형태이든 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이들이 저승에 대한 관념을 가졌고, 사자(死者)를 추모하는 장제 문화의 아주 초기 단계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먹고사는 문제 이외에 에너지가 소요되는 활동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렇게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을 고민했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 생각하고 사고하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초기적 증거물일 것이다.)

아래는 중기 구석기 시대에 출현했던 행동 유형을 가장 오래된 연대 순으로 표기한 자료이다.

28만 년 전: 돌날 제작, 숫돌 사용, 색소 가공

25만 년 전: 찌르개 제작

14만 년 전: 조개류 채집, 장거리 물물교환

11만 년 전: 낚시

10만 년 전: 뼈 도구, 톱니 날 찌르개, 채굴, 눈금 새김 돌

7만 년 전: 잔석기(화살촉, 작살촉)

6만 년 전: 구슬

4만 년 전: 그림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 밀려난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39p}

네안데르탈인은 약 3만 년 전, 현생인류가 유럽에 도착한 얼마 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들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 사멸한 것인지는 아직 수수께끼이다. 고인류학자들이 내놓은 추정에 의하면 네안데르탈인들이 인간과 달리 그 당시의 급격한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거나(3만 8천 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 화산 폭발), 인간과 교배하면서 동화되어 갔다거나, 면역력이 없는 인간의 지병에 감염되었거나, 인간에게 살해되었거나 등이다.

최근에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서 DNA를 추출하여 분석해 본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1~4퍼센트 정도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제한적이지만 상호 교배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교배 이론이 절대적인 답은 아니다. 인지능력과 사회적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집단 사이의 교배가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 도착한 이후 사냥 능력이나 채집 능력에서 격차가 있었을 것이고 서로 주식이 같은 상태에서 먹이 경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먹이 경쟁에서 승리한 집단은 더 빠르게 번식하고 퍼져나가기 마련. 또한, 사피엔스는 그다지 관용적인 집단이 아니다. 앞서 '인간 본성'에서도 다뤘듯이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자기중심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피부색이나 언어, 종교의 차이만으로도 집단을 몰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드백 루프가 누적되어 네안데르탈인은 자연 절멸한다.

출처:&nbsp; http://www.grabovrat.com/weekly1/grWeekly081214.html
출처:&nbsp; http://www.grabovrat.com/weekly1/grWeekly081214.html

 

 

후기 구석기 시대 - 대략 4 ~ 1만 년 전까지 (호모 사피엔스)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79~120p}

<호모사피엔스의 발원과 이동>

현재 우리가 인간이라 부르는 생물학적 종인 호모 사피엔스와 가장 유사한 뼈는 25만 년 전 ~ 20만 년 전 사이의 아프리카에서 발견된다. 그 시작이 동아프리카였는지, 남아프리카였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지만 이는 추후 연구가 진행되면 정리될 것이기 때문에 '그 기원이 아프리카다'라고만 알아두면 된다.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은 이전의 초기 인류들의 두개골보다 훨씬 더 둥글고 높아졌으며 앞이마는 평평해져 수직에 가까워지고 툭 튀어나온 눈썹 뼈는 줄어들게 되었다. 턱과 이빨도 작아졌다. 또한, 완벽하게 직립하여 장거리 달리기까지도 가능한 골격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더욱 정교해진 손재주, 다양하고 효율적인 도구 제작 기술, 더 복잡해진 사회조직, 완벽한 언어소통, 예술과 상징적인 표현 등을 통해 이전의 초기 인류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화를 발전시켰다.

호모 사피엔스는 총 2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규모 이동을 한다. 첫 번째는 약 13만 ~ 11만 4000년 전 직전의 간빙기인 이미안 (Emian) 간빙기 때이다. 이때 아프리카는 강수량이 증가하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사막 축소되면서 유라시아로 건너갈 통로가 조성된다. 이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이 시기에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 이동을 하면서 퍼져나간다.

7만 4000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화산 폭발(토바 화산)이 일어나고 전 세계에 추위가 불어닥친다. 두 번째 호모 사피엔스의 대규모 이동은 이때쯤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약 4만 5000년 전 ~ 3만 5000년 전 호모사피엔스는 유럽 땅으로 서서히 진출하여 호모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교배 혹은 학살, 먹이 전쟁의 비교우위) 대부분의 네안데르탈인을 이베리아반도로 몰아낸다.

[토막 상식]
고위도 지역의 인류가 피부가 더 밝은 이유: 위도가 높으면 일조량이 부족해진다. 저위도인 아프리카에서 살던 인류는 과다한 일조량에 맞서 빛의 투과가 어렵게끔 어두운 피부색을 갖췄지만, 이러한 장점이 고위도로 가면 불리해진다. 일조량이 적은데 피부색이 어두워서 비타민D의 합성을 방해했기 때문에 구루병(칼슘과 인의 대사 장애로 인해 뼈 발육에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을 의미합니다. 흉곽 모양이나 척추, 다리의 변형을 동반)으로 고생을 했고 이 병에 걸린 여성들이 설사 출산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기형인 아이를 출산하여 세대를 거쳐서 점점 어두운 피부의 인류는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옅은 피부색을 가진 인류가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현재는 영양제가 충분히 보급되었기에 고위도에 살면서 어두운 피부를 가져도 비타민D의 결핍은 잘 발생하지 않음)
출처:&nbsp; https://education.nationalgeographic.org/resource/global-human-journey

아래 사진은 2만 1000년 전 대륙의 해안선이다.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기후의 변화에 따라 그들이 살던 아프리카와 유사한 기후를 찾아다닌다. (추운 북부를 정복한 것은 나중 일이다.) 그렇기에, 이란과 인도를 거쳐 동남아시아로 방향을 튼 일부 호모 사피엔스는 남동 방향으로 향하였고 순다랜드를(낮은 해수면에 의해 생긴 동남아 대륙) 거쳐 약 5만 년 전 사훌대륙까지(낮은 해수면에 의해 생긴 뉴기니+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당도한다. 아무리 해수면이 낮아졌어도 사훌대륙은 바다를 건너야 했기에 호모 사피엔스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만 1천 년 전 해안선 모습:&nbsp; https://vividmaps.com/coastlines-of-ice-age/

 

순다랜드에 이른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는 북쪽으로 향해 지금의 동 시베리아, 중국 북부, 만주 지역에 정착한다. 이곳에 살던 수렵 채집인들은 이후 다시 차가워진 기후로 인해 남쪽으로 그 방향을 틀고 그중 만주의 수렵 채집민 일부가 3만 ~ 2만 5000년 전 한반도로 들어온다. 당시 한반도는 한랭 건조한 기후여서 몽골의 초원과 비슷했다.

 

순다랜드, 출처:&nbsp; https://vividmaps.com/coastlines-of-ice-age/
사훌대륙, 출처:&nbsp; https://vividmaps.com/coastlines-of-ice-age/

시베리아 & 만주지역의 호모 사피엔스는 먹잇감을 따라 계속해서 북상하다 지금의 베링해협을 만나고 (그때 당시에는 육지여서 베링육교라고 부름) 약 2만 ~ 1만 5000년 전 알래스카 쪽에 당도한다. 그 당시 북아메리카의 우측은 로렌타이드 빙상이, 좌측은 코딜레란 빙상이 막고 있었기에 대부분은 더 이상 남하하지 못한다. (일부는 두 빙상이 발달하지 않은 틈을 뚫고 내려갔다고 하고, 배를 이용할줄 알았기에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 집단도 있었다고 함)

출처: https://www.ontariobeneathourfeet.com/glacial-lake-algonquin

하지만, 1만 5000년 전 기후가 상승해 빙상이 북상하면서(녹으면서) 길이 뚫리자 호모사피엔스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퍼지게 되고 최종적으로 1만 5000 ~ 1만 2000년 전에는 페루 땅에 당도한다.

출처:&nbsp; https://www.pressdispensary.co.uk/q991593/images/20k.jpg

<섭생 방식>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생활기반은 사냥이었지만 두드러진 차이점은 고기잡이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어류 섭취도 많이 했고 식량을 끓이고, 굽고, 지지는 등 다양한 조리 기술이 있었다. 또한 고기 보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남은 고기들은 훈연, 건조시켜 식량이 부족할 때를 대비했다. 육류 위주의 식단은 현대인에게 각종 성인병을 불러오지만, 이 시기의 사람들은 신체 활동량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건강에 유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식물성 식량도 마찬가지로 많이 섭취했을 거라고 추측되지만 흔적이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아마 그간 쌓은 식물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먹을 수 있는 식물은 모두 채집하여 먹었을 것이다.

<도구 & 예술>

다른 지역에 독특한 문화도 있지만, 유럽 지역 후기 구석기의 시기별 문화는 그 특징에 따라서 오리냐크 문화, 그라베티안 문화, 솔뤼트레 문화, 막달레니아 문화로 나뉜다. 문화별 도구가 함의하는 것이 많지만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허나 그 종류나 완성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기쯤의 인류는 현생인류와 큰 차이 없이 그들의 생각을 펼쳤고 이미 약육강식의 정점에 올라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 줄어든 인류는 예술에도 두각을 나타낸다.

오리냐크 문화 - 박편 모양의 돌날(배 모양), 날이 달린 긁개 & 찌르개, 그림문자, 사자 조각상, 소형 비너스 상, 뼈로 만든 피리

그라베티안 문화 - 창의 촉으로 사용된 돌날, 순록의 뿔을 뾰족하게 다듬어 창의 촉으로 사용, 장식물 용 상아, 동물 이빨, 조개로 만든 구슬, 바늘, 동굴 손도장, 동물-인간 혼합 조각상, 뼈조각상, 비너스 상(큰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한 조각품이지만, 이때 살았던 여서의 뼈 유적을 보면 대부분은 영양이 풍부하지 않아 말랐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다산을 상징하는 부적처럼 사용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솔뤼트레 문화 - 나뭇잎 모양 돌날, 석촉(화살용), 평면 부조, 투창 가속기(투창 가속기는 창의 속도를 두 배로 올려준다. 이로 인해 사냥 성공률이 올라갔고 적은 에너지로 고기를 획득할 수 있었기에 후기 구석기 인의 인구수 증가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막달레니아 문화 - 개선된 투창 가속기, 구멍 뚫린 막대, 어업용 작살, 정교한 가는 바늘, 라스코 & 알타미라 벽화, 암각화

또한, 사냥 중심의 생활로 인해 사냥 조력자인 개를 길들이게 된다. (야영지 근처에서 인간이 먹다 남긴 것을 먹던 개와 늑대의 선조가 인간과의 공동생활에 정착함)

출처:&nbsp; 헤르만 파르칭거,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 글항아리, 2020, 89p
출처:&nbsp; https://www.donsmaps.com/elpendo.html

<생활상>

사냥을 위해 마냥 동물의 뒤를 쫓는 것이 아니라 임시 사냥 캠프에서 사냥을 한 후 거점으로 돌아왔다. (캠프에서는 거의 한 종류의 뼈, 거점에는 다양한 종류의 뼈가 발견된) 거점에서는 분업화된 업무에 따라 도살, 도축이 이뤄졌고 분해된 동물은 고기와 의복, 도구 등으로 가공되었다. 또한, 섬유질을 포함한 식물에게서 채취한 재료를 이용하여 의복, 바구니, 줄 등을 만들었다.

거점 공간은 땅을 얕게 판 움집 아니면 땅 위에 바로 세운 움막집의 형태이며 집터는 돌로 둘러서 표시하고 단단한 골격(나무, 대형 짐승의 뼈)으로 집을 받쳤다. 지붕은 나뭇가지 혹은 짐승의 털이었을 것이다. 바느질이 발달했기에 의복이나 지붕이나 꼼꼼히 꿰는 기술이 있었을 것이다. 집 크기는 약 20명에서 최대 100명까지 살 수 있을 정도로 다양했다.

출처:&nbsp; https://www.worldhistory.org/image/6111/replica-of-a-mammoth-bone-structure/

전기나, 중기 구석기 시대와 달리 후기 구석기 시대는 동굴을 자주 사용한다. (동굴을 좋아하는 곰과 살쾡이를 제압할 능력을 가진 이후) 이곳에 암석 벽화를 많이 그린다. 또한 동굴 안에서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등의 의식이 치러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치장에 있어서는 남자, 여자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즐겼다. 이빨을 이어서 만든 목걸이, 상아로 만든 구슬 장신구를 몸 이곳저곳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것이 풍습이었다. 옷의 형태도 다양하여 모자, 하의, 장화, 잠바, 혁대, 가방, 팔 장신구 등 다양한 형태가 발굴된다.

장제문화는 더욱 발전하여 시신에 황토색 안료를 뿌리기도 하고, 부장품도 넣었으며 심지어 공동묘지도 발견된다. 죽은 이들은 실제 삶에서 누렸던 지위에 맞게 매장되었고 적절한 행위를 통해 삶과 죽음을 연결하려 했다.

또한, 자연 현상의 제한적 혹은 잘못된 이해에 의해서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이 싹트게 되는데 아래 후기 구석기인에 빙의한 사고실험을 통해서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후기 구석기 인의 삶을 엿보기 위한 사고실험 - 초기적 종교의 탄생>

{존 핸즈, 코스모사피엔스, (주)소미미디어, 2022, 708~712p}

존 핸즈의 '코스모사피엔스'에서는 후기 구석기인들 입장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을 통해 그들의 삶을 추측해 보고 있으며, 특히 초기적 종교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다음 존 핸즈의 글은 편집 없이 인용하였으며 현존하는 증거들이 삽입되었기에 매우 흥미롭다. 우리가 25,000년 전으로 돌아가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글을 통해 그들의 삶과 종교를 엿볼 수 있어 아래와 같이 가감 없이 싣는다.

 

당신이 세균에 의한 질병, 기상학, 천문학을 비롯한 다른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해 보라.

25,000년 전에 당신은 당신의 확대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식물과 과일을 찾아다니고

고기를 먹기 위해 동물을 사냥했던 영역 내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당신의 아들 중 하나가 열이 나고 쇠약해져서 죽는다면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가뭄이 드는 바람에 작물이 영글기 전에 시든다면?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고 폭우가 쏟아지고 눈보라가 친다면?

여러 세대가 지난 후에 당신은 이러한 현상들 중 일부는 주기적 패턴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예측할 수 있는 순서에 따라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삶에 기본적인 리듬을 제공한다.

낮에는 노란 원반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으면서

사냥과 먹거리를 찾을 수 있도록 온기와 빛을 제공하다가 지평선 아래로 사라진다.

밤에는 하늘이 어두워지고 노란 원반과 비슷한 크기의 하얀 원반이 비슷한 시간 동안 하늘에 걸려 있다.

이것은 온기를 주지는 않지만 약간의 빛은 제공한다. 자야 할 때이다.

노란 원반과 달리 매일 밤 하얀 원반은 조금씩 줄어들다가 마침에 은빛 조각이 되더니

차올라서 다시 둥그런 원형이 되고, 이 주기가 반복된다.

여러 세대 후에 당신은 만월과 만월 사이의 날수가

당신 여자의 임신 여부와 관련 있는 월경 주기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당신은 달이 수태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생존은 당신의 여자가 어려서 죽은 아이들이나,

당신의 식량과 당신의 여자를 지키는 전쟁 중에 죽은 이들,

당신의 무리를 떠난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아들들을 생산해 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

캠프파이어 주변에 당신과 당신의 여자는 당신이 원하는 것의 상징물을 만들기 위해서,

매머드 상아에, 당신의 씨를 뿌리고 거기서부터 아이가 태어나게 될 여자의 음부와

그 아이를 먹일 풍만한 가슴을 새긴다.

그걸 당신의 여자가 파우치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거나 가죽끈에 매달아 목에 걸어서 달고 다니면

행운을 가져오고 건강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다.

당신은 출생의 반대편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당신이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주제이다.

당신은 당신 역시 다른 이들처럼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

전쟁에서 죽거나 전쟁에서 입은 부상 때문에 죽거나,

먹을 게 없어서 약해져서 죽거나, 열이 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해 죽거나,

그런 경우는 드물겠지만 오래 장수하다가 쪼그라들고 기력이 줄어들어 죽거나 좌우지간 죽는 건 확실하다.

이건 꽤 곤혹스러운 질문을 초래한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당신은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한 가지는 살아 있는 것은

숨을 쉬고 죽은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는 걸 안다. 죽은 이의 몸은 썩는다.

당신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가하는 죽음에 대한 지식에 대처하기 위해

당신의 숨결이나 생명력은 당신의 몸이 부패하도록 내버려 두고

떠나간 후에는 다른 어디론가 간다고 결론을 내린다.

당신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당신이 잠들었을 때 (죽어 있는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의 중간 단계) 꾸는 꿈속에서

당신은 세상과 사람들, 당신의 돌아가신 부모님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생명의 힘이나 영은 영의 세계나 꿈의 세계 같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생각 끝에 당신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당신이 사냥하고 당신을 사냥하려는 동물들, 당신이 먹는 식물과 과일,

당신이 주거지를 만들 때 사용하는 가지가 달려 있는 나무들, 심지어 생명을 주는 물이 흘러나오는 산)

생명력이나 생명의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당신은 다른 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이 영의 세계는 당신이 볼 수 있는 영역과 그 위의 하늘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당신과 당신의 확대 가족은 당신의 주거지의 영과 강한 일체감을 느끼는데, 이 영이 당신의 생존을 주관한다.

당신이 간빙기 유럽에 살고 있다면 사자를 숭상하고 두려워하며,

사자가 가지고 있는 사냥 실력을 필요로 한다.

만약 중앙아메리카에 살고 있다면

재규어의 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특별한 사냥감 예를 들자면

당신이 시는 곳을 가로질러 정기적으로 이주하는 들소 떼의 능력을 숭상할 수도 있다.

혹은 틀림없이 자라날 것이라고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야생 소맥 같은 먹을 수 있는 작물을 숭상할 수도 있다.

이들은 신성한 것들이 되고 당신이 속한 집단은 이런 영을

어떻게 대할지에 관해 터부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당신은 그 동물의 머리나 그 식물 다발 혹은

그것을 새긴 조각 등으로 당신을 장식함으로써 그것을 재현하기도 한다.

당신이 속한 집단 중 한 명이 계속 반복해서 춤을 추거나,

북을 치거나, 금식을 하거나, 혹은 환각성 식물이나 그 추출물을 먹는 방식을 통해

꿈꾸는 상태나 황홀을 불러일으키는데 능숙해졌다.

당신은 그의 영이 그의 몸을 떠나서 영의 세계로 들어가 거기 있는 강한 영의 도움을 빌어서,

당신의 몸에 들어와 열이 오르게 하고 쇠약하게 만드는 악령을 물리쳐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당신의 원래 영을 다시 불러들여서 당신을 다시 강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또한 그는 하늘의 영에게 구해서 비를 내리게 한다.

또한 그는 당신의 조상에게 미래에 있을 일을 알려 달라고 요청한다.

당신은 이 사람을 지혜로운 자, 혹은 샤먼으로 존경한다.

당신은 염료를 어떻게 만들어 사용하는지 알아내어 바위 벽에 당신이 생각하고 상상한 것을 그리기도 하고,

당신의 생각과 감정을 그룹 내의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소리로 표현하는 능력도 기른다.

생각, 구어 예술이 시너지를 일으키며 진화해서

당신의 동료나 후대들에게 당신의 경험, 상상,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홍적세 시기의 들쭉날쭉한 기후 환경 속에서

당신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쑥밭으로 만드는 폭풍도 경험하지만,

여러 대를 걸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늘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태양이 모든 식물을 시들고 말라죽게 했던 때도 있었다고 배운다.

정령들이 진노했으니 생존하고 싶으면 제물을 바쳐서 달래야 한다.

그들은 신들로 진화해 간다. 샤먼이 당신의 군집을 위해 중재한다.

그는 제사장으로 진화한다.

여러 세대 후에 당신의 거주지에 비가 내리지 않아 말라 가면,

생존하기 위해서 보다 비옥한 지역으로 이주해야 하고,

비옥한 지역은 호수 옆이나 거대한 강의 충적된 범람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여기서 당신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의 순환 패턴을 익힌다.

에너지 관점에서 본 초기 역사

{바츨라프 스밀, Energy and Civilization, MIT Press, 2018, 1~35p}

우주의 4가지 근본적인 힘 중 하나인 중력의 핵융합 반응의 부산물로써 나오는 '에너지'는(열과 빛의 형태) 범우주적 유일한 화폐이다. 밤하늘의 항성이 내뿜는 에너지는 열과 빛이 되어 행성에 도달하고, 행성의 생명들은 신진대사를 통해 그 에너지(빛과 열)를 몸속에 가두거나, 혹은 그 에너지를 가둔 다른 생명을 잡아먹으면서 항상성과 자기복제를 이어간다. 그래서 에너지는 생명의 제1 동력원이다.

인류의 발전은 다양한 각도로 해석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동력원인 에너지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완전한 해석일 것이다. 섭생 방식 & 도구 & 생활상의 발전은 어찌 보면 잉여 에너지를 생명체의 생존에 좋은 방향으로 투자하고, 투자의 결과물이 더 큰 잉여 에너지를 만드는 피드백 루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토막 상식]
수소 핵융합 반응: 중심부의 온도가 1000만K에 도달하면 수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 수소 원자 4개가 반응하여 1개의 헬륨 원자가 생성되고 부산물로 에너지가 방출됨 (열과 빛의 형태이며, 질량을 잃어버리는 대신 에너지가 생성됨, E=MC^2)
출처:&nbsp; 미래엔_통합과학 교과서 그림 발췌

[태양복사 에너지 -> 식물의 광합성]

태양은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1초마다 본인 무게 중 400만 톤에 달하는 질량을 잃어버린다. 이때 태양이 내뿜는 에너지의 양은 3.86*1026(W) 에 해당하며 그중에서 0.00000005%인 1.74*1017(W)만이 모항성인 태양으로부터 지구에 도달한다. 지구에 도달하는 에너지 중에서도 약 0.03%인 4*1013(W)만이 식물의 광합성에 이용된다. 하지만 이 광합성 덕분에 대기 중 탄소가 고정되어 신진대사(Metabolism)의 기초 원료인 포도당이 만들어진다.

 

[식물성 식량 -> 동물성 식량]

최초의 생명에서 고인류까지 진화의 역사는 아주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되었고 몇 백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조상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생성한 영양분을 섭취하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동물성 식량도 같이 섭취하였으며, 주식이 동물성 식량으로 바뀌자 뇌 용량의 증가가 함께 찾아온다. 뇌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기관이기에 크기가 커질수록 신체에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그들의 식습관은 고밀도의 에너지를 가진 고기류로 (고기, 단백질: 5.0~12.0 (MJ/kg)) 대체되었기에 충분히 감당 가능했고 뇌의 발달은 더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끔 도움을 주었다.

[토막 상식] - 음식별 에너지 밀도
야채와 과일: 0.8~2.5 (MJ/kg)
뿌리식물, 우유: 2.5~5.0 (MJ/kg)
고기, 단백질: 5.0~12.0 (MJ/kg)
곡물, 콩류: 12.0~15.0 (MJ/kg)
기름, 동물성 지방, 견과류: 25.0~35.0 (MJ/kg)

섭생 방식의 변화는 지금까지 쭉 언급한 구석기인들의 도구&생활상의 변화를 가져온다. 어떠한 집단이든 그 집단이 획득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에 따라 그 집단의 크기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아래에 언급한 에너지 획득 & 최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자들은 인류로 하여금 다른 생물 대비 에너지 전쟁에서 지속적으로 승리하게끔 만들었다.

(1) 언어의 발달 정도 --> 지식의 전승에 관여하며 시행착오를 줄여 적은 에너지로 성공률을 높이는데 기여함. 지식 자체도 시간에 따라 그 품질이 좋아지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주기 때문에 에너지 관점에서는 촉매제로 보아도 무방. (언어는 지식 전달 수단)

(2) 불의 사용 -->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 내장기관의 무게를 줄일 수 있게 됐고(뇌에서 늘어난 대사량을 내장기관에서 줄임),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을 줄이고(생존 능력 강화), 포획한 고기의 보관 기간이 늘어났으며 (훈제하거나 익힌 뒤 보관), 보존 방법의 진화는 식량 조달에 안정을 가져다주었고 식량 공급처를 찾아 헤매는 에너지를 줄여주어 잉여 에너지가 생기는 것을 도와줌.

(3) 도구 발달 --> 사냥 실패 확률을 줄여주어 한 번 사냥 시 획득하는 평균 에너지양을 증가시키며 (돌창, 투창 가속기, 활), 점점 더 에너지 밀도가 더 높은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게 도와줌(토끼 -> 사슴 -> 코끼리 -> 고래) , 날씨 변화에 의해 빼앗기는 열에너지를 최대한 낮춤(의복, 불, 움막)

(4) 집단 크기의 증가 --> 분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다양하게 습득하는데 드는 에너지를 줄이고, 전문화되어 실패 확률을 낮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임, 외부의 다른 집단으로부터 방어 효율이 올라감, 대규모 사냥을 통해 사냥 성공률을 높임, 자손 번식과 육아에 안정성을 부여하여 집단 크기 증가의 가속도 생성, 집단 생존에 도움을 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성됨으로써 집단 유지를 위한 총 에너지 감소

마무리

인류는 현재 간빙기를 지나고 있는데, 간빙기 전의 고인류가 써내려왔던 발자취를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어떠한 현상이든지 단 한 가지 원인에 의해서 그 일이 벌어졌다고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그렇기에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과학&종교) 구석기 인류를 살펴보았고 중심 뼈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인간이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맨 마지막 챕터에 에너지 관점을 욱여넣은 이유는 인류 전체의 역사를 에너지 관점에서 보는 서적이 시중에 많이 없기 때문에 그 부분을 보충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랬다. 앞으로도 매 Part마다 에너지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주제들에는 꼭 더 추가해서 쓰려 한다.

다음 Part 농경의 시작에 대해서 다뤄볼 예정이다.

 

<참조한 서적>

  • 인류는 어떻게 역사가 되었나(헤르만 파르칭거, 글항아리, 2020.03.20.)
  • 엔드오브타임(브라이언 그린, 와이즈베리, 2021.02.15.)
  • 빅 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웅진지식하우스, 2022.12.23.)
  •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박문호, 김영사, 2022.06.30.)
  •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11.23.)
  • Energy and Civilization(Smil Vaclav, MIT Press, 2018.11.13.)
  • 코스모사피엔스(존 핸즈, 소미미디어, 2022.01.27.)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리사 팰트먼 배럿, 더퀘스트, 2021.08.05.)
  • 바디: 우리 몸 안내서(빌 브라이슨, 까치,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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