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메르 초기왕조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앞선 part에서 언급한 젬데트 나스르 시기는 우루크 시대의 영향력이 줄어듦에 따라 생겨난 주변 지역의 부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종류의 변화는 비단 젬데트 나스르 지역뿐만이 아니었다. 기존의 우루크 영향력은 수 세기 동안 유지됐을 정도로 넓은 지역에 걸친 현상이었기에, 우루크의 공백은 저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다양한 문화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계기가 된다. 우루크 영향력의 빈자리는 아래와 같이 채워진다. 현재 남서부 이란의 초기 엘람메소포타미아 중남부의 젬데트 나스르 시기메소포타미아 중남부의 수메르 초기왕조메소포타미아 북부의 우루크-니네베 5기시리아&팔레스타인&아나톨리아의 초기 청동기 시대후에 다시 다루겠지만 서로서로가 인접..
지금으로부터 약 5500년 전 현 이라크 땅에 인류 최초의 농경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나타났는데, 이 시기는 우루크 시대의 중간쯤에 해당한다. 앞선 part에서는 문명이 무엇인지 정의해 보았는데(아래 토막 상식 참고)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혁신하게끔 만들었을까?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혹독한 환경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남쪽 지역은 두 강사이에 자리해 있고 바다도 인접하여 살기에 적합하고 농경하기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작물 생장에 있어 물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인 8~10월에 강물의 수위가 제일 낮았고, 봄과 초여름에는 토로스산맥에서 녹은 물들이 내려와 강물 수위가 높아져 농작물을 파괴했다. 때문에 이들의 선조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물을 통제, 저장, 관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
기체는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르고, 전기는 전위차에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문명의 흐름도 같은 맥락인데, 보통 높은 수준의 문명 혜택은 낮은 수준의 지역으로 흘러가서 주변으로 전파됐다. 높다 낮다의 기준은 지극히 인간의 기준이고 가치판단의 영역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동의하는 바에 의하면 높은 수준의 문명은 서남아시아에 존재했고, 그 기세는 르네상스 이전까지(15세기) 유지된다. (로마가 번성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이를 증명하듯 고대 로마에는 "빛은 동방에서 왔다(Lux ex oriente)"라는 속담이 있고, 이들에게 해가 뜨던 동쪽의 문명은 배움의 대상이었다. 과거에는 서양 중심의 사관이 서남아시아를 변두리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부분의..
수메르 문명의 시작인 기원전 4100년을 시작으로 서로마가 무너진 서기 476년까지의 역사를 우리는 고대사라고 부른다. 고대사에 해당하는 4500년간의 기간은 어디까지나 후대의 역사가들이 그렇게 정한 것뿐이며 각자의 사관에 따라 다르게 선을 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편의상 역사가들이 그어놓은 선을 따라가기로 하자. 이 기간은 인류사의(270만 년) 관점에서 보면 찰나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러한 찰나의 시간이 과거와 다른 점은 유물과 유적으로 그들의 생활상을 유추했던 것과 달리 문자로 기록된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대사의 시작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선사 시대, 그 이후는 역사 시대라 부른다. 물론, 문자로 기록됐다고 해서 모두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에 (사관이 개입하고, 승전국의 논리..
세계사가 아니라 시야를 넓혀 인류사의 관점에서 보면 흐름이 전환된 시점이 여럿 눈에 띈다. 지금까지 정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꼽아보자면 아래와 같다.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의 공통점은 모두 인류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효율 측면에서(인풋대비 아웃풋) 발전이 있었던 시기이다. 첫 번째, 270만 년 전 섭생 방식에서 육류가 추가되면서 생긴 뇌 발달의 가속화와 뇌 용량의 증가 두 번째, 140만 년 전 불의 사용으로 인해 소화기관의 간소화 세 번째, 10만 년 전 논리, 추론, 계산 등이 가능한 언어적 사고의 출현 네 번째, 1만 년 전 농경이 불러온 생산 방식의 근본적 변화 다섯 번째, 기원전 3000년경 말의 가축화를 통한 생활반경의 확장과 시간의 단축 여섯 번째, 기원후 인간이 사용 ..
기원전 3000년경 정주 문명이 서남아시아와 인도 아대륙 북부에 자리를 잡은 한편, 그들의 북방인 중앙유라시아 스텝 지대에는 특유의 환경을 (나무가 없으며 풀만 자라는 평야) 기반으로 유목민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었다. 이 지역은 명실상부 인류의 고속도로였고, 세계사의 변화를 추동하는 심장 역할을 하였다. 스텝 지대와 초원 지대는 모두 풀들이 많이 자라는 지대를 의미하지만, 스텝 지대는 보통 짧은 풀(최대 50cm)이 많이 자라는 지역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지역은 아래 사진과 같이 초록의 바다를 연상케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중앙유라시아 (Central Eurasia): 만주에서 헝가리 대평원(판노니아 평원)에 이르는 내륙 유라시아 일대를 지칭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주 민족의 입장에서 쓰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