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 진화의 동력 : 경쟁 vs 협력

앞서 원시 세포 이후부터 생물은 그 역사의 시작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해왔음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진화라는 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답하기 어렵다. '진화'라는 수레바퀴는 가만히 있을 수도 있는데 이를 뒤에서 굴리는 동력은 무엇일까?

이 Part에서는 이러한 진화의 동인이 무엇인지 종의 기원을 통해 힌트를 얻고, 종의 기원이 갖고 있던 한계 그리고 최근까지 밝혀진 생물 진화의 법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출처:  https://lessons.myjli.com/faith/index.php/lesson-5/evolution-myths-and-facts/

 

생명에는 우열이 없다 - 다윈: 종의 기원

{존 핸즈, 코스모사피엔스, 소미미디어, 2022, 411p, 418p, 498p}

인간이 노상 대면해야 하는 수많은 질문들을 답하는 데 있어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종교의 힘을 많이 빌려왔다. (아직도 그 영향력은 건재하지만, 과학은 많은 부분에서 종교를 대신해 이견이 없는 답들을 내어왔다.) 내가 만약 18세기 무렵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라는 명제의 참&거짓을 판별하려고 했다면 돌을 맞았을지 모른다. (1701년 기준 천지창조는 6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음) 이 같은 환경에서 1859년에 찰스 다윈은 28년간 자료들을 다듬은 끝에(5년의 여행, 23년의 자료 수집 + 기술 활동)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 -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 혹은 생존 투쟁 속에서 선택된 종의 보존] 초판을 발간하게 된다.

기독교의 인본주의적 시각은 인간의 이익에 중점을 두게 하고 인간 이외의 생명을 무의식적으로 경시하는 토대를 형성하였다. (이웃을 사랑하라, 자비로워라, 베풀어라 같은 윤리적 실천 명령들을 널리 퍼트린 이점을 충분히 감안하고서라도) 하지만,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라는 이름 아래에 생명의 우열 따위는 없으며, 가장 최근에 진화했다고 해서 우월한 것도 아니고, 진화는 진보가 아니기에 방향성도 없고 의도적이지도 않음을 말해 주었다.

다윈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다윈은 과도하게 뽕에 취해있던 인간들의 존재적 좌표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생물은 원래의 가지에서 갈라져 나간 하나의 나무이며, 생명의 역사는 새로운 종이 기존의 종으로부터 가지를 쳐 온 과정이다. 현재의 생물들은 가지치기를 통해 그 싹이 말라죽지 않고 살아남은 맨 끝 가지들이다.(찰스 다윈)

[토막 상식]
종과 변이의 차이: 새로운 종간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다만, 종은 비가역적이라서 서로 종이 다르면 다시 갈라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유전적인 특질이 그것이 진화해 나온 무리나 무리들의 특질로부터 비가역적인 변화를 거쳐 생겨나는 유기체 집단이다. (비가역적) 아종&변이는 다른 것과 구별되는 유전적인 형질이 그 조상의 군집이나 군집들의 특질로부터 가역적인 변화를 거쳐 생겨나는 유기체 집단이다. (가역적)
(복잡한 유기체가 단순한 유기체로 변해 갔다는 화석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함)
다윈은 같은 속 내의 종과 변이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며, 단지 종은 그 중간 단계의 변이가 자연 선택 과정 중에 "대체되고 전멸될"때 "비교적 정확히 정의된다"라고만 표현했다.

그렇다면, 후대 사람들이 평가하는 종의 기원의 의의는 어떻게 될까?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의 의의>

과학 분야에서는 어떤 생각을 처음으로 해 낸 사람보다는 그 생각으로 세상을 설득한 사람에게 찬사가 돌아간다.

(프랜시스 다윈 경, 1914년)

다윈의 공헌으로 인해 진화설은 진화론이 되었고 기여한 바는 아래와 같다.

(1) 생명엔 우열이 없다. 그저 적응과 변화를 반복할 뿐이다.

(인간이 특별한 것이 아닌 거대한 자연의 논리를 따르는 일부에 불과하다)

(2) 신이 각각의 종을 따로 창조했다는 정설을 뒤집는 증거들을 상당히 많이 수집했고, 하나의 속(분류) 내의 개별 종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점을 결정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설득력 있게 논증해 나갔다.

(3) 그러한 진화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연선택이라는 가설을 제기했다.

(4) 성선택이 또 다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5) 그가 생물학적 진화 현상을 널리 알리고 그 원인으로 자연선택설을 제시한 것은 과학계가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토막 상식]
다윈이 말하는 자연선택: 변이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주요한 이유인 자연선택은 한 유기체의 개체군 내에서는 가장 좋은 경쟁자라야 생존하여 새끼를 낳아 자신의 특질을 후대에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갖는다는 원리. 자연선택에 의해 두 가지 상이한 품종 간에 교배를 방해하는 장벽이 만들어지고 생식적 격리가 생김으로써 새로운 종이 나온다.
다윈은 종의기원 최종판에서 자연선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러한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인해, 비록 사소하더라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변이가 나타나 그 종의 개체들에게 유리하다면, 그 개체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어 이 변이는 대체로 후손에게 유전될 것이다. 그 후손 또한 이로 인해 생존에 더 유리해지는데, 그 종 내에서 정기적으로 태어나는 수많은 개체 중에서 소수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소한 변이라도 유용하기만 하면 보존된다는 이러한 원리를 인간의 선택과 관련시켜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로 부르려 한다.

 

생물학적 진화 현상을 설명하는 정통 이론 - 신다윈주의

{존 핸즈, 코스모사피엔스, 소미미디어, 2022, 443p, 640p~641p}

종의 기원 발간 이후 150년 정도 지난 지금, 현재의 정통 이론은 초기의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설에 더해 통계기반의 집단 유전학, 분자생물학을 종합하여 생물학적 진화 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현재 대다수가 지지하는 패러다임)

(1) 현존하는 종들은 과거에 살았던 종의 후손들이다.

(2) 단일 계통이 두 가닥으로 갈라지면서 새로운 생명체가 생겨나는데, 이를 종의 분화(speciation)라고 하며, 한 계통의 개체는 다른 계통의 개체와 교배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갈라지면서 종의 계보가 만들어지는데, 이 생명의 나무의 뿌리는 최초의 종이며, 그 잔가지들은 현재의 다양한 종을 뜻한다. 현대의 종에서부터 어떠한 잔가지의 쌍이든 역추적하여 그 본 가지를 지나면 가지들이 만나는 마디에 해당하는 공통의 조상에 이른다.

(3) 이러한 새로운 종의 진화는 그 종의 개체들이 이루는 집단이 수천 세대를 거쳐 겪어온 점진적인 유전적 변화를 통해 일어난다.

(4) 이런 변화는 개체 내에서 임의적으로 일어나는 유전적 변이, 성적 생식을 통해 각각의 부모로부터 전해진 유전자가 섞이면서 서로 다르게 조합되는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출현, 이런 유전적 변이가 여러 세대를 거쳐 그 집단 내의 유전자풀 전체에 퍼져 나가는 확산을 거치면서 일어난다.

(5) 이렇게 임의로 생겨난 유전적 변이 중에서도 집단 내 개체들이 특정한 환경 속에서 먹이 경쟁을 하고 더 오래 생존하고 더 많은 자손을 낳는데 유리한 특징을 만드는 유전적 변이는 자연 선택을 받아 더 많은 수의 자손에게 유전되는 반면에 그 집단이 속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유리한 특징을 만들어 내는 유전적 변이가 없는 개체는 세대를 거치는 동안 죽임을 당하거나, 굶어 죽거나, 멸종된다.

(6) 정보는 세포 내 유전자로부터 단백질로 흘러가는 한쪽 방향의 흐름이다.

그리고, 신다윈주의는 종합적으로 아래 세 가지 원인에 의해서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정리하고 있고 이는 한마디로 경쟁에서부터 자연선택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는 유전자 중심의 패러다임이다.

첫째, 임의 발생 유전자 변이: 임의 발생 유전자 변이 중에서도 종 전체 군집 내의 특정 개체에게 군집의 환경 속의 제한된 자원을 위한 경쟁이나 포식자로부터의 보호에 이점을 제공하는 형질을 암호화해서 가지고 있는 임의 발생 유전자 변이

둘째, 경쟁: 일차적으로 환경 내의 한정된 자원을 놓고 점점 늘어가는 군집 내의 개체들 간에 일어나면서 승자에게 보다 오래 생존하게 하고 더 많이 번식할 수 있게 하는 경쟁

셋째, 유성생식: 이런 유리한 유전자 변이를 수천수백 세대에 걸쳐서 군집 전체의 유전자풀 내에서 퍼트리는 유성생식

위에 제시한 원인으로 인해 마침내 그 잡단의 개체들은 원래 집단의 개체들과 더 이상 교배가 제대로 되지 않게 되며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다만, 이런 신다윈주의 이론도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으며 특히 아래의 예시들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안 되고 있다.

<신다윈주의의 한계>

아래의 예시는 '경쟁'에 의해 '자연 선택'된 '유전자의 변이의 누적'이 진화를 만들어낸다는 중심 도그마에서 벗어난 예시들이다.

(1) 정체된 종의 분화: 왜 동물 화석 기록상으로는 형태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변화가 일어나다가, 간간이 지질학적으로 짧은 기간 안에(수만 년) 새로운 종의 성체가 나타나서 수천만 년 혹은 수억 년 간은 별다른 변화 없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멸종하거나 보다 희귀하게는 오늘날까지 존재하는지?

왜 유전자 변이의 축적은 서로 다른 계통에서 거의 비슷하게 이어지는데 일부 계통에서는 환경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음에도 수억 년은 아니더라도 수천만 년 간 아무런 형태론적 변화나 종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지, 다른 계통은 동일한 시기에 상당한 진화론적 변천을 겪었는데도 말이다.

(2) 유전자형과 표현형: 왜 매우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일부 종들은 서로 다른 표현형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어떤 종들은 유전자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데도 유사한 표현형을 가지고 있는지.

(3) 급속한 종의 분화 - 배수성: 다배체화를 통해 점진적이기보다는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종의 분화, 이는 자연 상태에서 수많은 식물과 어류, 양서류, 파충류, 심지어 일부 포유류에서도 세포 내의 염색체의 정상적인 숫자가 늘어나는 현상인데, 현재까지 이에 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으며 지금껏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4) 획득형질의 유전: 왜 그리고 어떻게 획득된 형질이 그 어떤 유전자의 변화 없이 유전되는지? (임신한 쥐가 일반 농작물 살균제에 노출되면, 태어난 수컷은 생식력이 증가되는 현상 & 박테리아에서 12가지, 원생동물에서 8가지, 곰팡이류에서 19가지, 식물에서 38가지, 동물에서 27가지나 되는 유전자와 관련 없이 일어나는 유전의 사례들)

(5) 정크 DNA: 인간 게놈의 DNA 상에서 단백질 암호화가 되어 있다고 보는 유전자를 제외한 98퍼센트가량의 기능. 이는 지난 50여 년 간 "정크 DNA"라고 폄하되어 오다가 게놈 분석을 통해 이들 중 대부분이 유전자 네트워크의 표현을 통제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이것은 단백질 암호화가 된 유전자와 함께 표현형을 결정한다

(6) 유기체의 발생과 발전: 왜 남녀 성세포의 결합으로 수정된 단일 세포가 복제되어 똑같은 줄기세포들이 되고, 이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특정 세포들로 갈라지며, 이들이 독립적이고 복잡한 남성 여성 성인이 되는지?

(7) 수평적 유전자 전이: 왜 그러고 어떻게 해서 이 행성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종인 원핵생물이 유성생식은 하지 않고 스스로를 복제하는 식으로 증식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종과의 사이에서도 수평적 유전자 전이를 하는 방식으로 진화하는지?

신다윈주의의 공리가 설명해 주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다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진화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경쟁', '자연 선택', '유전자의 변이의 누적'이외에 더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신다윈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크로포트킨의 '협력'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막 상식]
유전자 변이의 점진적 축적 이외의 생물학적 진화를 돕는 요인
{존 핸즈, 코스모사피엔스, 소미미디어, 2022, 487p~591p}
협력 개념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살아남은 군집이 서로 갈라지는 메커니즘이 유전자 변이의 점진적 축적 이외에 다른 방안도 알려져 있으며, 아래의 개념은 위 신다윈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일부 보완할 수 있다.
트랜스포존: 1951년 허보 연구소의 세포유전학자 바버라는 트랜스포존이라는 유전자를 발견한다. 이것은 염색체 상의 다른 위치나 심지어 다른 염색체 안으로도 스스로를 잘라 내어 끼워 넣거나, 자가 복제한 것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DNA에 변형을 일으킨다. 1969년 분자생물학자 로이 브리튼은 트랜스포존이 유전자 표현형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게놈상에서 어디에다 자신을 끼워 넣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세포 타입과 서로 다른 생물학적 구조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다세포 유기체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세포, 조직, 기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을 이것으로 일부 설명 가능) 그리고 알려진 것과 달리 인간 게놈의 98%를 이루는 정크 DNA는 그 명명과 다르게 유전자 표현형을 결정하는 복잡하고 협력적인 네트워크를 이룬다. (아직 정크 DNA가 가진 기능이 무엇인지 스터디가 더 필요하다)
종간의 유전자 쌍 수평적 전이: 유전자 변이의 점진적 축적은 부모세포에서 딸세포로의 수직적 유전자 전이이지만, 원핵생물과 일부 진핵생물은 수평적으로 유전자 전이가 일어난다.
교잡으로 일어나는 게놈의 병합: 서로 종이 다른 생물끼리의 자식인 잡종은 생식능력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항상 그 명제가 참인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성별에 따라 생식능력이 다르다. 축우와 들소를 교배하면 비팔로(Beefalo)가 나오는데 수컷은 생식능력이 없지만 일부 생식능력이 있는 암컷과 교배해 나온 수컷은 생식능력을 갖고 있다. 개와 자칼을 교배하면 생식력 있는 안정된 잡종이 나온다. 또한, 회색 곰과 북극곰 사이의 자손도 성공적인 교배가 가능하다.

 

협력 - 최소한의 에너지로 얻는 최대의 행복

{표트르 크로포트킨 , 만물은 서로 돕는다, 여름언덕, 2015, 22p~90p}

사고를 확장하여 '경쟁에서부터 자연선택이 일어난다고 가정하는 유전자 중심의 패러다임'에 얽매이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조건에서 개체 수 조절의 주체가 무엇일까? 신다윈주의가 말했던 것처럼 한정된 자원 내에 경쟁력 없는 군집이 종의 유지가 불가능해져 자연 도태와 함께 개체 수가 감소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러한 케이스는 꽤나 특이한 사례라는 것이 크로포트킨의 설명이다.

그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1) 한정된 자원 내의 경쟁 작용은 날씨와 같은 자연의 억제 작용에 비할 바가 못되며 하찮은 조건이다. 대부분 자연에 적응하지 못하고 먹이는 풍부한 상태에서 출산율 2.1을 만족하지 못해 자연 절멸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제 자연환경에서는 먹잇감이 풍족하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개체 수 과잉에 이르기 전에 자연조건에 의해 개체 수가 조절이 된다.

(2)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은 것이 더 진보적이라고 볼 수도 없으며, 자연선택은 진화의 요건이 아니라 현상을 견딘 결과일 뿐이다. (살아남은 어떠한 종에 대해 자연 선택에 의해 살아남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말이다. --> 자연은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는다. 또한, 돌연변이는 절대 유리한 방향으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또한, 종의 분화는 멜서스 식의 경쟁 없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토막 상식]
크로포트킨의 예시
러시아 남동부의 많은 마을을 예로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곳 주민에게 식량은 풍족했지만 위생 시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지난 80년 동안의 출생률이 1천 명당 60명으로 높은 편인데 반해 현재의 인구가 80년 전과 똑같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우리는 그곳 주민들 사이에서 무서운 경쟁이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신생아의 3분의 1이 6개월 내에 사망하고 2분의 1이 4년 내에 사망하며, 스무 살까지 사는 아이가 1백 명당 17 명 정도일 뿐이어서 해가 계속 바뀌어도 인구는 줄곧 정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들의 대부분은 어른이 되어 경쟁할 만한 자격을 갖추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의 경우가 이렇다면 동물의 경우는 더 말할 여지도 없다. 새들의 세계에서는 초여름에 알이 엄청나게 없어지는데 이 시기에 새알이 여러 동물의 주요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는 폭풍우는 물론이고 홍수 때문에도 수백만 개의 새 둥지가 파괴되며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는 어린 포유동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이론상으로는 조류와 포유류 사이에서 극심한 경쟁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폭풍우와 홍수, 새 둥우리에 침입하는 쥐,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 등이 경쟁자의 숫자를 엄청나게 줄여버린다.
어떤 한 종의 일부가 종종 새로운 종류의 먹이를 먹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예컨대 다람쥐는 낙엽송 숲에서 솔방울 숫자가 줄어들면 전나무 숲으로 이동하며, 이렇게 먹이가 바뀌는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다람쥐의 몸에 생리적인 영향을 미친다. 만일 이듬해에 낙엽송 숲에서 솔방울 숫자가 다시 크게 불어난 덕에 이런 습성 변화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분명 다람쥐의 새로운 변종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람쥐가 차지하고 있는 넓은 지역의 물리적 특성의 일부가 변화하기 시작하면, 예컨대 날씨가 더 온화해지거나 건조해지는 바람에 낙엽송 숲보다 소나무 숲이 더 불어나고 몇몇 다른 조건이 이에 합세해서 다람쥐들을 그 건조한 지역의 외곽에 거주하게 만든다면, 다람쥐 사이에서 멸종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일어나는 일 없이 하나의 새로운 변종, 곧 새로운 다람쥐의 초기종이 생겨날 것이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한 새로운 변종 다람쥐 가운데 대다수는 해마다 살아남을 것이고, 그 중간 고리에 해당하는 다람쥐는 맬서스식의 경쟁으로 굶어 죽는 일 없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저절로 소멸되어버릴 것이다.

크로포트 킨의 말처럼 자연은 선택하지 않고 억제 작용만 한다면 그리고 빠른 환경 변화에 적응한 개체가 생존에 유리하다면 그 적자는 어떻게 선택되어지는가?(가려지는가) 이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최대한 편집 없이 크로포트킨의 의견을 아래에 넣었습니다.)

적자는 신체적인 힘이 가장 강하거나 가장 교활한 종이 아니라 강한 개체들과 약한 개체들이 모두 함께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연합해서 서로 돕는 법을 익히는 종이다. 진화의 한 요인인 상호부조(협력)는 종의 유지와 그 이상의 발전을 보장해 주고 최소한의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최대한의 행복과 삶의 즐거움을 확보해 주는 개체의 습성과 특성의 발전을 촉진하기 때문에 상호투쟁(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한 법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동물들의 경우에는 협력이 경쟁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다. 자손을 남기려는 욕구에 의해 개체들은 단합하고 이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서로를 돕게 되고 그 종이 살아남을 가능성도 더 높아지고 지능 발달도 더 촉진된다. “모든 종류의 동물, 특히 고등동물은 상호부조를 한다"

나는 경쟁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호 경쟁보다는 상호 지원이 동물계의 점진적 발전을 더 촉진해 주며 인류의 점진적 발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단언한다. 모든 유기체는 두 가지의 본질적인 욕구, 즉 영양 섭취의 욕구와 종족 번식의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 영양 섭취의 욕구는 서로를 싸우게 하고 박멸시키려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반면 종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는 서로의 사이를 가깝게 해주고 서로를 돕게 만든다. 하지만 저는 유기체 세계의 진화 과정, 곧 유기체의 점진적인 변화 과정에서는 개체들 간의 상호 지원이 상호 투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사회생활은 장수할 수 있게 해주며 최소한의 에너지를 들여 새끼들을 양육할 수 있게 해주고, 출산율이 낮아도 그 개체 수를 유지시켜줄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그 덕에 새로운 거처를 찾아 이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윈과 월리스가 언급한 힘과 날램, 보호색, 교활함,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는 능력이 개체나 종을 주어진 어떤 환경하에서 적자로 만든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사회성이야말로 어떤 환경에서도 생존경쟁을 하는 데 최대의 이점이 되어준다는 주장을 옹호한다. 자진해서 혹은 어쩔 수 없어서 사회성을 포기한 종은 필연코 소멸하는 운명을 맞고야 만다. 그런 반면에 지적인 능력을 제외하고 다윈과 월리스가 열거한 다른 모든 능력의 면에서는 열등하다 해도 결속하고 연합하는 법을 잘 터득한 동물들은 생존하고 진화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얻게 된다.

가장 고등한 척추동물,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은 그런 주장의 제일 확실한 증거가 되는 존재다. 모든 다윈주의자들은 지적인 능력이 생존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지속적인 진화의 가장 강력한 요인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들은 또 지능이 사회적 능력의 하나임이 분명하다는 점도 역시 인정할 것이다. 언어, 모방, 축적된 경험은 지능 발달에 꼭 필요한 요소이며 사회성이 없는 동물에게는 이런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높은 수준의 사회성과 지능 발달 상태를 겸비하고 있는 개미, 앵무새, 원숭이가 각각의 동물류 중에서 최상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야말로 적자이며, 사회성은 직접적으로는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종의 안정과 행복을 확보해 줌으로써, 간접적으로는 지능의 성장을 뒷받침해 줌으로써 진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크로포트킨은 말처럼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사회성 강한 동물이라면, 다음과 같이 진화론을 보완할 수 있다.

한정된 자원에 의한 생존 경쟁보다는 빠른 환경 변화가 종의 멸절을 더 초래하고, 사회성이 강한(협력) 종이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아 기존의 군집과 멀어져 진화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말을 조금 바꿔보자면 한정된 자원에 의한 생존 경쟁보다는 빠른 환경 변화가 종의 멸절을 더 초래하고,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 하는데 성공한' 종이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아 기존의 군집과 멀어져 진화한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남아있다. 군집 내의 협력이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는데 유리한 것은 알겠으나, 어떻게 다음 세대로 추상적 개념인 '사회성'이 유지되거나 더 발전하는지? 협력의 개념으로 신다윈주의가 답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설명할 수 있는지?

협력의 개념은 신다윈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신다윈주의도 한계가 있고 진화의 원인과 그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니 이에대한 보완으로 협력이라는 개념을 더한 것이지 않을까.

다음 Part6에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뇌의 발달과 의식이란 무엇인지 정리하고 인류의 탄생을 추적해 보겠다.

(Part5의 내용은 Part6와 연결 되지만 중간에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여 Part5.5를 추가한다.)

<참조한 서적>

  • 코스모사피엔스(존 핸즈, 소미미디어, 2022.01.27.)
  • 만물은 서로 돕는다(표트르 A. 크로포트킨, 여름언덕, 2015.11.15.)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디플롯, 2021.07.26.)

본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발행했던 글입니다. https://m.blog.naver.com/gb145/222865987604